즉행으로 떠나는 베트남 여행 03

손진석 기자 발행일 2018-01-18 02:23:27 댓글 0
고갯길을 넘어 마지막 여정,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 후에로
▲ 다낭의 아침 전경

호텔에서 쏭한(Sông Han)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즐거움이 끝났다. 이번 여정에 의미는 느리지만 편안한 여행과 용기를 내어 출발한 여행이 즐거움으로 남아 매우 많은 행복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희망하는 여행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용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가기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곤 한다. 여행은 다양한 것들을 선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번 여행을 위한 용기에 대한 씨앗으로.


▲ 다낭을 가로지르는 쏭한 건너로 하이반 고갯길이 구름에 가려 보인다.

다낭을 여행하다 보면 집들이 대동소이한 모습들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 광광지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집들을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가로 4~6m, 세로 16~18m의 규격으로 지어야하며, 집을 옆집과 벽을 붙여 지어야한다. 이때 앞면은 페인트를 칠하고, 옆면이 시멘트 담이라면 붙여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페인트가 칠해 있으면 단독으로 사용한다는 표시다.


다낭의 여행은 아쉽지만 마무리를 하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있던 후에로 떠나야 한다. 후에로 가려면 하이반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아쉬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해 언제든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 하이반 고갯길 정상에 있는 휴게소 전경

하이반 고갯길은 정상이 구름과 맞닿아 있어 구름낀 대양의 고갯길이라는 애칭이 있다. 이곳 정상에는 옛 전쟁당시 미군들이 전망대와 벙커를 세워 경계와 경치를 감상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여행할 때 주의 점은 버스가 멈춘 곳 정면에 있는 매점의 물건과 화장실만 사용해야 된다.


▲ 하이반 고갯길 정상에서 바라본 후에 가는 길

잠시 쉬는 동안 휴게소 건너편 언덕에 전망대를 올라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준다. 가까워서 보이지 않지만 구름이 나를 부르는 것이리라. 조금의 수행으로도 근두운을 탈 듯 해진다.


고갯길에서 2시간 남짓 달려 옛 수도인 후에(Huế)에 도착하면, 다낭과 다른 도시를 만나게 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본산 자동차가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다낭보다 좀 더 탁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후에는 1945년까지는 베트남의 수도였다. 다낭보다 작은 도시지만 도로망은 더 좋다. 후에의 시민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마지막 왕조의 왕궁이 있는 도시고, 대학교가 5곳이 있는 교육도시다. 그리고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 티엔무 파고다에서 바라본 흐엉강 전경

후에는 흐엉강(Sông Hương)이 흐른다. 옛적에는 강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 향강(香江)이라 했으나 향이 없어져 지금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강을 끼고 강이 보이는 언덕위에 티엔무 사원(Chùa Thiên Mụ)이 있다.


▲ 티엔무 사원의 7층 불탑 모습

월남전 당시 미군이 불교 탄압을 많이 했다. 그 당시 주지스님인 틱꽝득(Thich Quang Duc) 스님은 미군의 탄압에 맞서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 앞에서 소신공양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때 불에 탄 자신이 앞으로 쓰러지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고, 뒤로 스러지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국 불에 탄 시체는 뒤로 넘어졌다. 놀라운 일은 그의 심장이 불에 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어느 나라든 처음 여행을 가면 그 곳의 역사적 유적지를 살피는 것은 여행에 조미료를 더하는 것과 같다. 현지인들의 애환을 가슴에 담고 마주보면 지혜가 추가됨을 체험하게 된다.


▲ 후에 왕궁 전경

이 곳 후에도 우리의 경복궁 같은 유적지가 있다. 바로 후에 왕궁이다. 이곳은 아쉽게도 전쟁으로 많이 소실되어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있다. 또한 왕궁 곳곳에 우리나라의 숨결이 숨어 있는데 한·베트남 문화 교류 일환으로 역사유적 복원에 기술과 다양한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 후에 왕궁의 태화전에서 바라본 오문모습

후에 왕궁은 경성 안에 황성이 있고, 황성 안에 자금성이 위치해 있는 구조다. 경성에는 10개의 문이 있는데 아직도 복원 중이다. 그리고 왕궁의 정문격인 오문도 방문당일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업무를 보던 태화전과 후원에 위치한 문관과 무관이 머물던 건물이 좌우에 있고, 중앙에는 전쟁당시 사라진 건물터만 남아 있다. 그 외에 왕실 사당과 문묘 등을 둘러보고 왕궁주변의 해자를 따라 탐방을 마쳤다.


▲ 후에 왕궁의 문화해설사인 미스터 록

후에 왕궁의 둘레가 10Km가 넘어 전동차를 타고 투어하는 것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다. 또한 전동차를 타면 해설사분이 한국말로 해설을 해주 베트남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날 역사 해설을 해주신 분은 미스터 응우엔 황제의 자손인 미스터 록씨였다. 젊을 때 김일성대학을 다녔고, 한·베트남 문화교류 당시는 통역을 담당한 분으로 연세가 70에도 아직도 문화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저녘 노을을 뒤로하고 후에 전통 음식점에서 석쇠에 구운 돼지고기 요리 분짜와 월남쌈 롤, 청경채 요리, 바나나 꽃과 그린망고가 들어간 셀러드 등의 전통요리로 식사를 했다. 이후 시클로를 타고 30여분 후에 시내를 관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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