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고] 걸림돌이 아닌 성장 도구로서의 환경규제

데일리환경 기자 발행일 2015-04-10 12:15:44 댓글 0
▲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규제는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성장의 걸림돌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저탄소 녹색성장을 얘기하면서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무시무시한 규제를 도입한다.


환경규제의 대의명분은 이해가 되는데 여기에 성장도 꿈꾸고 있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불만들이 많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기업활동에 장애물이라고 단정하고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고, 국가경제 전체로 봐서는 틀린 말이다.


배출권거래제의 핵심


배출권거래제란 할당받은 배출권 이상 온실가스 등 오염물질을 배출하면 외부에서 배출권을 사거나 배출량이 적을 경우는 오히려 배출권을 팔아 수익으로 삼을 수 있는 제도이다. 당연히 배출권의 가격이 높게 형성될수록 배출 절감을 목적으로 한 신기술개발에 대한 투자와 고용은 촉진된다.


높은 배출권의 가격은 기업의 부담이라는 국내의 인식과는 달리, 일정 수준의 환경규제가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미 영국, 스위스, 뉴질랜드 등에선 배출권 관련 연관산업이 크게 성장해 왔다.


내수시장에 대한 발상의 전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중 하나의 중요한 축은 내수시장 성장이다. 해외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사실상 세계 평균 이상의 성장을 이루려면 내수시장의 성장이 핵심인 것은 자명하다.


좁디좁은 국내시장을 전제로 전체 국민소득에서 내수부문의 비중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는 필자가 한국은행 국민소득팀에서 사회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십 수 년간 따라온 고민이었다.


‘수출을 통한 성장’이란 수요를 해외에서 찾는 것으로 FTA 등을 통해 해외에서 유효시장을 확장하여 사업기회를 찾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반면 최근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내수시장 성장’은 국내에 유효한 소비시장을 키워 기업들이 해외시장 뿐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돈을 벌게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중산층의 소비여력 진작 등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기업들이 사업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동안 거론되어 온 금리인하 혹은 부동산 경기 진작 등 소비여력 확충을 목표로 한 내수시장 활성화 대책들은 과연 우리경제에 중장기적인 혁신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할까? 또한 각종 대형 국책사업들 역시 정부차원에서의 수요를 창출할 순 있으나 생산적이지 않는 투자는 국가 예산이 건설사 수입으로 손바꿈되며 가져올 일시적인 소득효과에 그친다.


이런 정책에 예산을 낭비하느니 가능하다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서 발생하는 낙수(落水)효과가 더 장기적으로 유익하다. 즉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여력 확충 혹은 정부지출보다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내수 진작책이 훨씬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내 투자유인책을 제공할 소재를 찾기 힘들단 것인데 배출권거래제라는 일종의 환경규제는 사실 훌륭하게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예산 한 푼들이지 않고 말이다.


환경규제가 내수시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유


다소 부담스럽게 비싼 배출권의 가격은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감축 유인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투자를 이끌 수 있고 이는 새로운 산업에의 고용을 부른다. 화석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싼 배출권 구입 대신, 온실가스 절감 혹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 및 고용을 촉진시킨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의 규제는 자의반 타의반 이러한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 수요를 창출하게 되고 확장된 생산시설은 단위 생산비 감소를 가져와 싼값에 기술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태양광 패널로 고속도로를 만드는 구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풍력발전 기술을 100% 국산화하여 서해안에 초대형 발전단지를 건설한다면? 소비자들이 수소차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수소 충전소를 전국에 확충하여 수요를 확보한다면 적어도 국내업체들의 수소차의 생산단가는 해외 완성차업체들을 훨씬 밑돌 것이다.


이러한 신기술을 이용한 시장은 사실 수요부족으로 그동안 흥하지 못했을 뿐이지 기술 및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즉 이러한 수요를 정부가 ‘규제를 통해’ 창출해주는 것이다.


스마트폰 국내업체들이 혹독한 국내 시장에서 생존해 세계시장으로 나간 것과 같이 국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룬 친환경 기술 산업군은 해외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따라하려 해도 우리처럼 산업계의 반발이 신경 쓰여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긴 정치적으로 힘들테니 오히려 이들 국가들의 산업계 저항이 우리의 신시장 선점을 도와줄 것이다. 이 경우 에너지 절약형 기술개발로 인한 환경개선 효과는 (사실 규제도입의 대의명분이기는 했었지만) 성장효과 외에 덤으로 누릴 수 있는 이득이다.


배출권거래제가 단순한 규제로 끝나지 않으려면


필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규제이다. 기존 산업계 등의 반발에 굴복해 일관되지 않거나 여차하면 낮춰줄 용의가 있는 환경규제는 더 이상 성장의 도구가 아니다. 그야말로 불편하기만 한 규제에 불과하다.


근근히 버틸만한 규제는 새로운 친환경 기술개발 투자유인을 제공할 수 없고 새로운 기술로 무장하고 환경규제를 오히려 반기는 신산업 집단을 잉태시킬 수 없다.


산업계의 불평대로 선수가 뛰는데 거추장스러운 정도로 발목만 잡는 규제일 뿐이다. 제도의 목적이 새로운 선수를 양성하자는 것인데 새로운 선수가 태어날 환경도 제공하지 않고 기존선수들의 발목만 잡는다는 것이다. 부디 정부·산업계·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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