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오의 시선] 1990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극장을 찾았다. 개봉 후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작품은 홍콩 영화의 대표작이자 장국영을 상징하는 영화로 꼽힌다.
생성형 AI와 OTT 확산 등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이 급변하는 가운데 <아비정전>은 단순한 고전 영화의 재개봉을 넘어 관객들에게 시간과 기억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청년 아비와 그를 사랑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총격전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래서 처음 보는 관객은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비정전>은 사건보다 감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붙잡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끝내 외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왕가위 감독은 이들의 방황을 통해 청춘의 불안과 상실감을 그려낸다.
특히 많은 관객이 기억하는 장면은 장국영의 맘보춤이다. 흰 러닝셔츠 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몇 분 남짓한 장면은 지금도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젊음의 자유와 자신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동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변한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청춘에 보았던 <아비정전>은 멋진 배우와 감각적인 영상의 영화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아비정전>은 전혀 다른 작품처럼 다가온다.
당시에는 영화 속 인물들이 형이나 누나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관객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대사와 침묵, 스쳐 지나가는 눈빛들이 새롭게 읽힌다. 청춘의 한가운데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청춘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셈이다.
최근 극장가에서는 고전 영화 재개봉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러브레터>,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 시대를 대표했던 작품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OTT의 확산으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감상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고전은 세대를 넘어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고, 과거 관객에게는 추억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재개봉 영화의 관객층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풍경도 발견된다. 처음 작품을 접하는 젊은 세대와 과거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장면을 바라본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화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기억이다. 그러나 스크린 앞에서만큼은 서로 다른 시간이 하나로 이어진다.
어쩌면 <아비정전>의 재개봉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장국영이 연기한 역할인 '아비'는 여전히 젊고, 영화 속 홍콩의 밤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의 나이뿐이다.
마침 이번 재개봉은 장국영이 태어난 1956년 9월 12일, 7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세월은 흘렀지만 스크린 속 장국영은 여전히 30대 초반의 아비로 남아 있고, 관객만이 그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그렇다. 단순한 고전 영화 재상영이 아니다. 잊고 지냈던 청춘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보는 작은 여행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여행 끝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젊음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이 남긴 흔적을 아직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 본 기사(칼럼)에 소개된 작품은 별도 초청이나 협찬 없이, 기자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관람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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