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킴 여섯 번째 개인전 ‘STILL, LIFE’ … 멈춘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온기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11-07 14:10:32 댓글 0
- 부산 BIFC2 f22갤러리서 11월부터 전시
- 식어가는 커피와 꺼진 방의 불빛, 평범한 순간에 머무는 시선
- 정물과 삶 사이 쉼표 하나…고요함 속에 숨은 존재의 의미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장면을 지나친다. 아침에 마시다 남긴 커피, 외출하기 전 매만진 옷깃, 식탁 위에 놓인 버터 한 조각. 특별할 것 없는 사물들은 하루가 저물면 기억에서도 희미해진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평범한 풍경은 오래 바라볼 만한 하나의 세계가 된다.

▲ 전시 소식(출처=부산 BIFC2 f22갤러리)

일상의 작은 순간을 그림으로 붙잡아 온 로렌킴(Loren Kim) 작가가 여섯 번째 개인전 ‘STILL, LIFE’를 통해 관람객들과 만난다. 전시는 11월 1일부터 부산국제금융센터 BIFC2 22층 f22갤러리에서 진행된다.

▲ 전시 안내(출처=데일리환경)

이번 전시의 제목 ‘STILL, LIFE’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개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그린 정물화(Still Life), 그리고 쉼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읽으면 ‘여전히, 삶’이라는 또 다른 문장이 된다.


그 작은 쉼표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서둘러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그 안에 머물던 삶의 흔적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대상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풍경이 아니다. 넥타이를 매는 손, 서서히 식어가는 주말의 커피, 충전 중인 통화, 불이 꺼진 방의 휴대전화 불빛, 접시 위의 버터와 화장대 위의 향수병 같은 일상의 사물들이다.

4월의 풍경과 8월의 해바라기처럼 계절을 품은 장면도 그 안에 놓인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풍경이지만, 너무 익숙해서 오래 바라보지 않았던 순간들이다.

삶은 대개 특별한 날보다 그런 평범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아침을 준비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식어가는 차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 작가는 그 일상의 조각들을 화면에 옮겨 우리가 놓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움직임이 멈춘 그림 속에서는 오히려 사물의 존재가 선명해진다. 아무 말 없이 놓인 물건에도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향수병에는 외출을 준비하던 아침이, 커피잔에는 잠시 쉬어가던 오후가, 꺼진 방의 작은 불빛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누군가의 밤이 겹쳐진다.

이처럼 로렌킴의 전시는 정물화를 통해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물을 그리지만 그 사물 곁에 있었을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멈춘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전후로 이어졌을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전시 소개 글에는 이러한 시선이 담겨 있다. “멈춰 있어도, 되풀이되어도, 조금 모자라도. 여전히, 삶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하루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미처 끝내지 못한 일과 식어버린 커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도 저마다의 무게와 온기가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로렌킴의 그림은 관람객들에게 조용한 질문을 건넨다. 오늘 하루를 살아오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제대로 바라보았을까.

삶은 언제나 멀리 있는 특별한 사건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식탁 한편, 창가에 놓인 작은 사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의 고요 속에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렌킴의 ‘STILL, LIFE’는 그 평범한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다. 멈춘 듯 보이는 그림 앞에서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삶이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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