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은 0.1%도 안 되는데…네팔 대홍수, ‘기후정의’ 다시 묻다

유승철 기자 발행일 2026-09-16 07:41:40 댓글 0
사망 1,386명·실종 5,130명…복구에 50억달러 국제지원 추진
손실과 피해 기금 2천만달러 요청…빨라지는 히말라야 빙하 소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실제 특정 지역의 현장 사진이 아닙니다. · 출처: AI 생성 이미지 / 데일리환경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에도 못 미치는 네팔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촉발된 대형 홍수의 직격탄을 맞았다. 수천 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이번 참사는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기후취약국이 더 큰 재난 피해를 떠안는 ‘기후정의’ 문제를 다시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8월 말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대규모로 붕괴하면서 거대한 급류가 발생했다. 9월 15일 기준 네팔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1,386명, 실종자는 5,130명에 이른다. 중국 측에서도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홍수와 토사가 마을과 도로, 교량을 덮쳤고 네팔의 주요 전력원인 수력발전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네팔 정부는 복구를 위해 약 50억달러 규모의 국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을 비롯해 주요 국가와 국제기구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유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에도 2천만달러를 신청했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기후변화로 이미 발생했거나 피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 기후재원이다. 그러나 피해국들의 수요에 비해 실제 확보된 재원은 크게 부족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119개국이 요청한 지원 규모는 총 28억달러에 달하지만 확보된 재원은 약 4억달러 수준이다.
배출은 적지만 빨라지는 히말라야의 변화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은 세계 전체의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히말라야 고산지역에서는 기온 상승에 따른 빙하와 영구동토층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통합산지개발센터(ICIMOD)는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빙하 소실 속도가 2000년 이후 두 배가량 빨라졌다고 분석했다.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 경로가 계속될 경우 이 지역 빙하의 현재 부피가 2100년까지 최대 80%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다만 이번 홍수를 기후변화 하나만의 직접적인 결과로 단정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빙하와 암석의 붕괴에는 지형과 지질, 강수, 빙하 변화, 영구동토층 약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온 상승이 빙하와 고산지대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산사태와 홍수 위험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 연구기관들의 공통된 경고다.
이번 재난은 네팔 정부의 기후정의 요구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장관은 당시 밀려든 급류를 ‘히말라야의 쓰나미’에 비유하며 피해 규모를 설명했다. 또 네팔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국가가 막대한 기후재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주요 경제국과 배출국들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네팔 정부는 특정 국가를 상대로 직접적인 배상을 청구하는 것과 국제사회의 기후재원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구분하고 있다. 중국 측이 공개한 양국 외교당국의 면담 내용에 따르면 네팔은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에 개별적인 ‘기후정의 배상’을 요구할 의도는 없으며, 유엔기후변화협약과 파리협정의 틀 안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네팔과 중국은 히말라야 생태계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빙하 관측과 재난정보 공유, 조기경보 등 국경을 넘는 기후위험 대응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 피해 책임, 국제법의 쟁점으로
기후재난의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는 국제법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5년 7월 기후변화에 관한 권고적 의견을 통해 국가가 국제법상 기후보호 의무를 위반할 경우 국가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것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국가에 자동으로 특정 재난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배상 문제에서는 국가의 국제법상 의무 위반 여부와 함께 그 행위와 구체적인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따져져야 한다. ICJ의 권고적 의견 역시 일반적인 국제법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개별 국가의 특정 피해에 대한 배상액을 결정한 판결은 아니다.
네팔 대홍수는 결국 기후변화를 적게 일으킨 국가가 얼마나 큰 피해를 떠안을 수 있는지를 다시 보여줬다. 동시에 재난이 발생한 뒤 지원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기후취약국의 위험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히말라야의 빙하 감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손실과 피해 기금 등 기후재원을 얼마나 확충할지, 네팔과 주변국이 빙하 감시와 재난 조기경보 체계를 얼마나 강화할지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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