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노동자가 숨진 4건의 사고 역시 모두 안전관리자가 없는 공사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법정 선임기준 충족 여부와 별개로 발주기관인 한국도로공사의 현장 안전관리 체계가 충분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실이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산업재해 승인이 확인된 고속도로 유지보수공사는 모두 158개였다.
이 가운데 안전관리자가 선임되지 않은 공사는 126개로 전체의 79.7%를 차지했다. 안전관리자가 선임된 공사는 31개(19.6%)였으며 1개 공사는 선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건수를 기준으로 봐도 비슷했다.
같은 기간 발생한 산재 167건 가운데 안전관리자 미선임 공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129건으로 77.2%를 차지했다. 안전관리자가 있는 공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37건(22.2%), 선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고는 1건이었다.
한 공사에서 산재 6번…반복사고에도 안전관리 제대로 작동했나
같은 공사에서 산업재해가 반복된 사례도 확인됐다. 경부고속도로 기흥나들목 개량공사에서는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무려 6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전북본부 전주수목원 생태체험교육시설 신축공사와 중부고속도로 청주흥덕 하이패스IC 설치공사에서도 각각 3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통합)휴게시설 신축공사와 순천완주고속도로 춘향(순천)휴게소 신축공사,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고덕강일지구 방음시설 설치공사에서도 각각 2건의 산재가 확인됐다.
6개 공사에서만 모두 18건의 산업재해가 반복된 것이다.
특히 한 공사에서 산재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것은 최초 사고 이후 위험요인 분석과 재발방지 대책이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발주기관인 도로공사가 첫 사고 이후 시공사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어떻게 확인했는지, 반복사고 현장에 대해 별도의 특별점검이나 작업방식 개선을 요구했는지 등 사후 관리체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 숨진 4개 현장 모두 ‘안전관리자 미선임’
사망사고 현황은 안전관리 공백 문제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0월 중부내륙고속도로 터널 LED 교체 ▲2021년 1월 기흥TG 도색작업 ▲2022년 9월 군포지사 관내 시설물 유지보수 ▲2025년 8월 영주지사 조경시설물 유지보수 등 노동자가 숨진 4건의 공사에서 모두 안전관리자가 선임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관리자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공사금액에 따라 법적으로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는 현장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 유지보수 작업은 일반 건설현장과 달리 차량이 고속으로 통행하는 차로와 인접해 작업하거나 야간작업, 중장비 작업 등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 공사금액만으로 현장의 실제 위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안전관리자 미선임 현장에서 발생했다면 법적 의무 여부만 따질 것이 아니라 고위험 작업에 별도의 안전관리 인력을 배치하는 등 도로공사 자체 안전기준이 충분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6,863건 중 안전관리자 선임 263건…고작 3.8%
전체 유지보수공사로 범위를 넓히면 안전관리자 선임 비율은 더 낮아진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유지보수공사는 모두 6,86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안전관리자가 선임된 공사는 263건으로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반면 안전관리자가 선임되지 않은 공사는 6,561건으로 95.6%에 달했고 39건은 선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안전관리자 선임률이 낮은 데에는 고속도로 유지보수공사의 대부분이 소규모 공사라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전체 유지보수공사의 98.7%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령상 건설업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는 공사금액에 따라 적용되며 2023년 7월부터 50억원 이상 공사까지 확대됐다. 50억원 미만 공사는 법정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이 아니다.
결국 도로공사가 발주하는 유지보수공사의 대부분이 법정 안전관리자 선임 기준 밖에 있는 셈이다.
‘법적 의무 없다’로 끝낼 문제 아냐…도로공사 관리 책임도 점검해야
문제는 법적 선임 의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고속도로 유지보수 현장의 안전관리 공백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고속도로 유지보수공사는 공사 규모가 작더라도 실제 작업환경에 따라 위험도가 크게 달라진다. 공사비가 적더라도 통행 차량 바로 옆에서 작업하거나 야간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작업할 경우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발주기관인 도로공사가 법정 최소기준에만 의존하기보다 작업 위험도를 자체적으로 평가해 안전관리 인력을 추가 배치하거나 현장점검을 강화하는 체계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산재가 한 차례 발생한 현장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면 단순히 개별 시공사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발주기관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안전관리 분야 관계자는 “안전관리자 선임 여부만으로 개별 사고의 원인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고속도로 유지보수는 일반 공사보다 작업환경 자체의 위험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며 “공사금액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안전관리 수준까지 낮아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차량 통행구간 인접 작업이나 야간작업, 중장비 작업, 터널 내부 작업처럼 사고 발생 가능성과 피해 규모가 큰 공사는 금액과 관계없이 위험성평가 결과에 따라 안전관리 인력을 별도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한 현장에서 산재가 반복된다면 최초 사고 이후 실시한 위험성평가와 재발방지 조치가 적절했는지 발주기관도 확인해야 한다”며 “반복사고 현장에 대해서는 작업중지나 특별점검, 안전관리 인력 추가 투입 등 단계별 관리기준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로공사, ‘공사비 기준’ 넘어 위험도 중심 관리체계 마련해야
이번 자료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법적 안전관리자 선임 기준과 고속도로 현장의 실제 위험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지보수공사 6,863건 가운데 95.6%에서 안전관리자가 선임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곧바로 도로공사의 법 위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법정 선임기준인 50억원 미만 공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재가 발생한 공사의 79.7%에서 안전관리자가 없었고, 확인된 사망사고 4건도 모두 미선임 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현행 안전관리 방식의 실효성을 점검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더욱이 한 공사에서 최대 6건의 산재가 발생하는 등 동일 사업장에서 사고가 반복됐다는 것은 사고 이후 관리와 재발방지 대책까지 살펴봐야 할 사안이다.
도로공사는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을 충족했는지를 넘어 반복사고 현장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안전관리자가 없는 고위험 소규모 공사에는 어떤 대체 안전관리 체계를 운영했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강득구 의원은 “사망사고가 5억원대부터 80억원대 공사까지 공사금액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 것처럼 사고 위험은 공사금액을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며 “고속도로 현장의 특수한 위험을 고려해 공사금액 중심의 안전관리자 선임에 빈틈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로 인접작업, 야간작업, 중장비작업 등 실제 작업 위험도를 기준으로 안전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도로공사가 발주한 공사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이 아니었다’는 설명만으로 안전관리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복되는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사금액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작업 위험도와 사고 이력에 따라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관리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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