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고위법관이 사법개혁을 주제로 진행된 한 학술행사를 축소하도록 일선 법관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1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조사보고서를 내놨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이규진 상임위원으로부터 공동학술대회 대응 방안과 관련해 2건의 대책 문건을 보고 형식으로 전달받았다. 이 문건에는 ‘운영위원회 구성원들을 일대일로 접촉해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주최하는 공동학술대회 안이 부결되도록 유도하는 것’과 ‘운영위를 설득해 국제인권법연구회 명칭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소모임인 인사모 명칭으로 공동개최하도록 하는 방안’, ‘연구회 자체 학술대회로 축소하고 외부 광고를 금지하는 안’ 등이 명시돼 있었다.
이에 대해 조사위는 “이규진 상임위원이 연구회 회장에서 물러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치가 필요함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고, 연구회 관계자들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대회의 연기 및 축소를 시도한 것은 적정한 수준과 방법의 정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 보고에 따라 실장회의 등에서 논의된 대회 관련 대책들 중 일부가 실행된 이상 법원행정처도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학술연구회 중복가입을 금지한 예규를 강조한 조처와 관련해서도 “기존 예규에 따른 집행이기는 하나 그 시기와 방법, 시행 과정 등에서 시급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아 인권법연구회 또는 학술대회를 견제하기 위해 부당한 압박을 가한 제재로서 사법행정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봤다.
그러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법관 인사 의혹과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결론을 내놨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이모 판사가 법관 정기인사 발표 이후에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가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비밀번호가 걸린 파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제기됐다.
조사위는 “뒷조사 파일(블랙리스트)은 결국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판사가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들었다는 판사들 뒷조사 파일은 (학술대회) 대책문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외 전체 판사들 동향을 조사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3월 24일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 관련자 11명에 대한 대면조사, 20명을 대상으로 서면조사, 사건 관련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통화 내역 등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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