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6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04-27 10:18:09 댓글 0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필자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청년들의 고민 가운데 연애 상담의 비중이 꽤 높다.

그래서 필자는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권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제법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지만, 그 대가로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의 낯선 얼굴까지 발견하게 해준다.


나와 다른 사람을 품어 가는 과정에서 사람은 한 뼘씩 성숙해진다. 물론 이별과 다툼이 남기는 생채기가 있지만, 그 상처조차 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된다.

그래서 한때는 필자가 운영하는 단체의 장학생들에게 '6개월 이상 연애 성공 시 장학금 100만 원'을 내걸었던 적도 있었다.


관계중독이 만들어내는 나쁜 연인들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관계중독'은 공식적인 병명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매달려, 그 관계가 나를 갉아먹는 줄 알면서도 끝내 끊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쉽게 말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불안해서 상대에게 과하게 기대거나, 상대의 연락과 인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나는 괜찮다'라고 느끼는 마음의 습관이다.


관계중독의 원인은 대개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갈래가 얽혀 있다

가장 흔한 배경은 불안정한 애착이다.

아주 이른 시기의 양육 경험은 성인이 된 뒤의 친밀한 관계 방식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애착 불안이 큰 사람일수록 '버려질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에 과도하게 매달리거나 상대의 사소한 반응에도 예민하게 흔들린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상처 경험과 관계 트라우마이다.

아동기의 학대나 정서적 방임, 버려진 기억, 혹은 성인이 된 후 반복된 폭력적 관계와 큰 정서적 충격은 한 사람의 마음에 이런 모순된 문장을 새긴다.

“관계는 불안하지만, 관계가 없으면 더 불안하다. ” 이쯤 되면 관계는 더 이상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처럼 작동한다.

정리하자면 관계중독은 대개 불안정한 애착 + 과거의 상처 + 낮은 자존감 + 외로움과 불안 + 익숙해진 관계 패턴이 한데 만나 만들어진다.

결국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라기보다, 관계를 빌려 불안을 달래는 방식이 몸에 밴 것에 가깝다.

문제는 자립 초창기에 이 관계중독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고, 그 틈을 파고드는 '나쁜 연인들'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이다.

나쁜 연인의 사례는 나쁜 부모의 사례만큼이나 흔하다.

한 편의 칼럼에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사연이 두텁고, 또 그만큼 아프기에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 '나쁜 연인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풀어볼까 한다. 오늘은 그 첫 장(章)으로, 두 청년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려 한다.

이 관계중독은 유독 자립 초창기의 청년들에게 자주 관찰되며, 그 흔적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자립정착금이 불러온 달콤한 연애

막 자립을 시작한 청년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은 생각보다 무겁다. 그 외로움은 때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실제로 자립정착금을 고스란히 뜯기는 사례가 적지 않고, 대부분은 자립 초기에 벌어진다.

최근에는 정착금 관련 교육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선배들이 겪은 씁쓸한 사례들을 후배들이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하며 경각심을 품게 되었지만, 막상 현실에서 맞닥뜨리면 절대 쉽지 않더라고 청년들은 입을 모은다.

30대 중반에 이른 청년들을 만나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자립정착금은 6개월 안에 사라지는 게 국룰이지." 그렇게 철없던 스무 살 시절을 웃음 섞어 회상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청년이 보육원을 나와 연인을 만나면 동거나 반(半)동거로 이어지는데, 이때 나쁜 연인을 만나면 정착금이 바닥나는 순간 이별을 고하거나, 돈을 빌려 달아나는 경우가 적잖이 발생한다.

A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스무 살에 보육원을 나와 대학에 진학했던 A는 생활비의 벽에 부딪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연인을 만났고, 연인은 A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A의 원룸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거 한 달째부터 연인은 일을 관두고 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을 했다. 생활비는 내지 않았고, 집안일은 오롯이 A의 몫이었다. 연인의 휴대폰 요금도, 게임 결제액도, 용돈도 전부 A의 아르바이트비에서 빠져나갔다.

결국 버티다 못한 A는 손대지 않고 아껴 두었던 자립정착금 300만 원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정착금이 약 200만 원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연인은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라는 이유로 150만 원을 빌려 간 뒤, 석 달 가까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나타나 잘못했다며 빌었고, A는 또 한 번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겨우 생활비나 벌던 A에게 연인은 계속 돈을 요구했고, 이 모든 관계는 A가 2금융권에서 1,500만 원의 대출을 받아 연인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비로소 막을 내렸다.

연인이 떠난 뒤에도 A는 한동안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지냈다.

그러나 사랑은 순간이고, 대출금은 현실이다. 다행히 A는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출 원금은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 현실판

B는 누가 보아도 인재였다.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 길 없지만, 저토록 명민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뛰어난 청년이었다.

유수의 대학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했고, 석·박사 과정까지도 장학금으로 생활비를 해결하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미래가 기대되는,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어느 날 B에게 연인이 생겼다. 연인은 누가 보아도 외모가 수려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B의 '럽스타그램'에 미세한 균열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연인 사이의 다정한 투닥거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이 깊어지는 법이니까.

B가 필자에게 상담을 청했을 때는 둘이 사귄 지 여섯 달을 갓 넘겼을 무렵이었다.

연인이 바람을 피웠는데, 용서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B의 눈빛에는 연인을 향한 미련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정 용서하고 싶다면 해봐라. 다만 조금이라도 후회가 될 것 같으면, 빨리 끊어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지금 와서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 말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당장 끝내라고 단호히 말하라고 다그치고 싶다.

그 뒤로 B의 연인은 같은 패턴을 집요하게 반복했다. 바람피우고 돌아오고, 또 바람피우고 돌아오고, 돈을 빌려 간 뒤 잠수를 탔다가 다시 돌아오고. 잠시 동거했던 시절에는 같이 사는 집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B는 또 용서했다.

더는 아침드라마의 소재로도 쓰이지 않을 법한 이 기이한 연애는, 그렇게 꼬박 3년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결혼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르다 싶은 나이였지만, 연인이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임신 기간 중 연인이 또 바람을 피웠고, 이를 알게 된 B가 화를 내자 연인은 “충격을 받았다.”며 유산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준비를 중단했다. 유산의 충격에 대한 '위로금' 명목으로 B는 연인에게 500만 원을 건네고서야 관계를 끝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유산 당시 임신 약 3개월 차였다고 했는데, B와 연인은 단 한 번도 함께 산부인과에 간 적이 없었다.

임신했다는 소식도, 유산했다는 소식도 모두 연인의 일방적인 통보로 B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위로금을 왜 주었느냐고 내가 묻자, B의 대답은 더없이 간결했다. "사랑해서요."


사랑이라는 달콤함에 중독된 청년들

사랑은 실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연인 사이의 건강한 사랑은 서로를 자라게 하고, 책임감과 신뢰를 품은 어른으로 마침내 완성시킨다.

나를 믿어주고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감각은 삶에 깊은 안정을 주기에, 그 자체로 거대한 성장동력이 된다.

연애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설령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어쩌면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에게 연인 간의 사랑이란, 생애 처음으로 온전하게 주고받는 사랑의 첫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한 연애를 해보라고 늘 힘주어 권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달콤하게 포장된 나쁜 연인을 만났을 때, 그 손을 단호히 놓아버릴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불안정한 애착에서 비롯된 관계중독이 또 다른 나쁜 연인을 불러들이는 일이, 부디 이제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오늘도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말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먹고, 기도하라. 연인 간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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