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보사태 등 기업들의 도미노 부도…‘IMF 시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문민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조명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새벽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기업들 저마다에겐 변화의 시기였다. 군사정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의 새 시대를 연 만큼 기업들은 생존에서부터 새로운 도약과 성장을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에 불어닥친 IMF는 한보사태와 기아자동차 등의 기업 연쇄부도로 이어져 암흑기였다는 평이다.
문민정부의 ‘기업 신경영’ 시대
대통령 집권 후 1993년 8월12일 대통령긴급명령인 긴급재정경제명령 제 16호를 발동해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김영삼의 재벌개혁을 위한 첫 번째 정책이었다.
금융기관에서 가명이나 무기명으로 거래할 수 없는 ‘금융 실명제’ 도입 시도로 문민정부는 빛을 바랬으나 금융 실명제를 시도하기 앞서 매번 재계와 고위공직자들의 반대로 실패한 흔적은 남아 있다.
도입 당시 재계는 정부에 저축률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박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업입장에서 금융실명제가 도입되게 되면 거래목록이 낱낱이 들어나게 될 것이고 자연히 세금부담율도 높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인해 우려했던 경제적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하경제 규모를 억제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정경유착과 같은 부정부패 사건의 자금추적에 도움이 됐다.
문민정부의 재벌개혁에 국내 기업들의 도약은 눈에 띄게 발전했다는 평이다.
삼성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답게 문민정부 5년간 눈부시게 성장한 기업 중 하나다. 문민정부 출범 첫해인 1993년 6월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야 한다'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1993년 29조원에 불과하던 그룹 매출이 20년 만인 2012년 380조원으로 13배 성장하면서 국내기업에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삼성의 경영개혁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재계 일각의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김영삼 정권 당시 대기업들의 계열 분리가 눈에 띄게 잦았다.
LG그룹은 1995년 1월 전 계열사에 사용하면서 36년간 사용하던 럭키금성그룹의 명칭을 LG그룹으로 바꾸고 그해 2월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20년간 외환위기와 빅딜, 지주사 출범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을 30조원대에서 150조원대로 늘렸다.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00조원으로 늘려 10배로 키웠다.
CJ그룹도 문민정부에 들어서 삼성에서 계열 분리 돼 1996년 출범해 승승장구 하고 있고, 신세계도 1997년 공식 계열 분리 됐다.
그러나 갑작스런 대기업들의 잇단 몰락으로 김영삼 정부는 비운으로 마감했다.
기업들의 연쇄부도, IMF
문민정부 임기가 끝날 무렵인 1997년 건국 후 최대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1997년 당시 재계순위 14위였던 한보그룹이 5조7000억원에 육박하는 채무로 부도가 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해당 사태가 유명한 까닭은 한보그룹의 대출 과정에서 재계, 정계, 금융계의 핵심인사들끼리 서로 유착하며 부정부패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임기 초 96.2%에 육박했던 국민들의 지지율이 1997년에는 46.9%로 반 토막 났다.
한보사태를 시작으로 국가 대외신용도가 급격하게 하락했고 국가 경제는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같은 해 3월부터 6월까지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이했다. 또한 7월에는 국내 자동차 대표업체인 기아자동차가 부도위기에 빠져 대한민국 경제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10월에는 쌍방울과 태일정밀이 무너졌다. 이어 해태, 뉴코아도 부도를 면치 못했다.
1997년 11월30일 정부는 IMF에 자금지원을 신청했고 IMF는 조건으로 ‘저성장 고실업’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같은 해 12월3일 정부는 IMF 조건을 받아들였고 시민들은 김영삼 정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급작스런 한국 경제의 끝없는 나락으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재계, YS 애도
한편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에 경제단체 또한 일제히 추도 논평을 내고 경제선진화에 앞장선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를 표했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의 경제 선진화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발판삼아 한국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추도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께서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 공개제도 도입을 통해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셨다”며 “서거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였고 국민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논평에서 “김 전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며 “금융·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하며 경제개혁을 이끄셨고 하나회 척결과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를 통해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도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다”고 추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을 내고 “고인은 오랜 기간 민주화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통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으며 금융실명제 도입, OECD 가입 등 경제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면서 “경영계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오늘의 슬픔을 이겨내며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논평에서 “고인은 문민정부를 이끌며 지방자치제 도입,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등록의무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선진 민주사회로 진일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며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했다. 무역협회는 “고인은 수출 1000억 달러 및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며 “우리나라가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초석을 놓으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김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청 개청, 벤처기업법 제정 등 중기·벤처 지원의 틀을 새로 마련했다”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애도했다. 이어 “특히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여 국가정보화를 선도하도록 해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 IT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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