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한국수출입은행은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에 따라 수출환경이 급변하자 6조 원 규모의 위기대응특별프로그램을 신설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통상·무역질서 피해를 입은 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2%p 금리 인하와 신용등급 하락 시 추가 가산금리 미부과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임이자 위원장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집행 실적은 기대와 달리 매우 저조하다.
신설 이후 8월 말까지 집행된 금액은 1조 5,600억 원으로 전체 계획의 26%에 불과했고, 월별 지원 규모도 ▲4월 4,759억 원 ▲5월 2,681억 원 ▲6월 3,816억 원 ▲7월 2,744억 원 ▲8월 1,608억 원으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지원 건수 역시 같은 기간 186건에서 52건으로 급감했다.
정부가 지난 9월 3일 ‘美 관세협상 후속 지원대책’에서 제시한 여러 금융지원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성과가 뒤처졌다. 5월~8월 집행률을 비교하면 수출입은행은 19.7%로, 산업은행(0.5%)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반면 기술보증기금의 ‘위기극복 특례보증’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통상리스크 대응 긴급자금’은 같은 기간 각각 60% 이상의 수준을 달성해 대조를 보였다.
지원 절차도 비효율적이다. 기존 고객은 신용평가 절차 생략으로 빠른 지원이 가능하지만 신규 고객은 승인까지 평균 두 달이 걸려 사실상 긴급지원 기능을 상실했다. 홍보 역시 부족해 지금까지 설명회는 111개 기업에 그쳤고, 뉴스레터 발송도 800여 개사에 머물렀다.
특히 현재 수출입은행과 거래하는 중소·중견기업이 5,197곳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수혜 범위는 턱없이 협소하다. 관세 충격에 가장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조차 제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임이자 위원장의 지적이다.
임이자 위원장은 “겉으로는 전용 금융상품처럼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지원에 머물고 있다”며, “늑장과 협소한 지원으로는 관세 충격을 막아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근 한·미 정상회담 관세 협상 결과도 불명확해 기업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 정부 대책마저 빈수레 요란한 격에 그치고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책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제대로 집행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임이자 위원장은 “수출입은행이 지금 있는 제도만 제대로 운영해도 관세 피해기업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집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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