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5월 15일은 스승의날이다. 한때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를 부르던 날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하던 시대도 있었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의 교실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교권 침해, 악성 민원, 학생·학부모와의 갈등, 아동학대 신고 논란까지. 일부 교사들은 "아이를 지도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말한다. 생활지도를 하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찍히고, 짧게 훈계한 내용조차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는 일이 반복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교권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반대로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과거 학교는 '절대적 권위'라는 이름 아래 적지 않은 폭력을 용인해왔다. 이른바 '사랑의 매'라는 표현 속에는 체벌과 공개적인 모욕, 인권 침해가 뒤섞여 있었다. 교탁 자, 출석부, 회초리가 교육 도구처럼 사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결국 지금의 혼란은 단순히 '요즘 학생들이 문제' 혹은 '예전 선생님들이 더 훌륭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과거에는 지나친 권위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권위 자체가 사라진 시대에 가깝다. 존중과 통제가 동시에 무너진 셈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은 교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교실 안에서 끝났을 일이 이제는 영상과 캡처 이미지로 온라인에 확산된다. 교사의 부적절한 행동도 감시받지만, 동시에 교사의 정상적인 생활지도조차 '논란 콘텐츠'가 되기 쉽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카메라 앞에 놓인 시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교육의 본질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는 민원을 걱정하고,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며, 학부모는 학교보다 사교육을 더 믿는다.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권위는 분명 사라져야 했지만, 그렇다고 교사가 단지 '서비스 제공자'처럼 취급되는 현실 역시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현장에서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퍼진 지 오래다. 적극적인 생활지도보다 소극적 대응이 안전하다는 인식이다. 이는 결국 학생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아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스승의날이 불편한 기념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촌지와 선물 문화 논란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카네이션 하나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존경의 표현은 사라지고, 경계와 오해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체벌과 권위주의 시절을 미화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지금처럼 교사의 권위와 교육적 역할이 지나치게 위축되는 상황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보호되어야 할 가치다. 교사도 보호받아야 하고, 학생도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침묵시키는 방식으로는 건강한 교실이 만들어질 수 없다.
스승의날의 의미는 단순히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떤 관계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는 날이어야 한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스승의날 행사 준비로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며 설레어하고, '스승의 은혜'를 흥얼거리는 학생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시대가 변하며 존경의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감사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정민오 기자 auto@daily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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