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선
유클리드가 기하학 원론에서 세운 다섯 번째 공준, 이른바 '평행선 공준'는 단순하지만 또한 단호하다. 끝이 없고 완전히 평평한 2차원 공간 평면에서 나란히한 두 직선의 평행선은 아무리 무한히 연장해도 결코 만나지 않는다.
종이 위에 또는 칠판 위에, 우리가 사는 평면의 세계에서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절대 진리다.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다.
인간과 신과의 관계도 오랫동안 그렇게 그려져 왔다. 나란히 존재하지만 결코 교차하지 않는 두 개의 선.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한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사야 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간격이다. 평면 위에서 평행선이 아무리 연장되어도 만날 수 없듯이, 죄로 인해 벌어진 그 간극은 인간의 노력이나 도덕적 진보만으로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유클리드의 제5공준인 평생선 공준이 평면의 절대 법칙이듯, 죄와 거룩함 사이의 단절도 성경에서는 단호하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평면을 벗어나면 규칙이 바뀐다
19세기, 가우스·로바체프스키·리만 같은 수학자들은 유클리드 제5공준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만약 우리가 평면이 아니라 곡면 위에 있다면?" 그 질문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태어났다. 특히 구면(球面) 위에서는 '평행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르게 작동한다.
지구본을 떠올려 보자. 자오선(경선)들은 적도에서 서로 완벽하게 평행하다. 남북으로 나란히, 같은 간격으로 뻗어 있다. 평면적 직관으로는 이 선들이 영원히 만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 선들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결국 모두 북극점과 남극점에서 하나로 만난다. 평면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차원이 하나 더해진 입체 '구(球)'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만남의 결과가 된다. 평행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놓인 공간이 더 큰 차원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빛의 관점에서 보아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기준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거리의 간격이 무의미해진다는 상대성이론의 통찰처럼, 또는 하늘의 별들이 하루(항성일) 동안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회전축의 두 끝 '천구의 극'에서 모든 별의 궤적이 한 점으로 수렴하듯, '결코 만날 수 없어 보이는 것'은 더 높은 기준점에서 보면 이미 하나의 중심을 공유하고 있다.
입체인 구(球)에서 평행선의 만남, 그 중심에 서신 분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구원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인간의 차원, 즉 죄로 물든 평면 위에서는 결코 좁혀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 곧 성육신이라는 '입체'를 여심으로 그 평행선을 하나로 모으셨다. 바울은 그 중재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다. 이는 기하학적으로 말하면, 평면의 법칙에 매인 존재가 아니라 그 평면을 감싸는 구(球) 자체가 된 것 같다. 평면 위의 두 평행선은 그 입체인 구의 표면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점, 극(極)에서 만난다. 에베소서는 그 만남을 '담을 허무심'으로 묘사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에베소서 2:14)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든,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담이든, 그리스도는 스스로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두 선이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바로 그 유일한 접점,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밝혔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평행선의 역설이 주는 위로
유클리드 기하학만 아는 사람에게 "평행선이 만난다"는 말은 모순이다. 그러나 더 큰 차원, 곧 입체인 구(球)의 면 위에서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이 된다. 마찬가지로 죄로 단절된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과의 화해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더 큰 차원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새로운 입체적인 공간'에서는 그 화해가 이미 이루어진 실재다.
평행선은 거짓이 아니지만, 다만 평면이 전부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평면을 넘어 우리를 입체의 세계로, 만남의 중심으로 이끄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 본 칼럼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개역한글판을 따랐으며, 본문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성경 읽기에 근거한 하나의 묵상적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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