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그 이전의 공백
2022년 6월 22일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자립정착금을 비롯하여 자립 준비 청년과 관련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개정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현재 자립정착금은 지자체별로 1,000만 원 이상 지급하도록 권고되고 있지만, 2022년 이전에는 지자체마다 금액이 상이하여 300만 원에서 800만 원 정도에 머물렀다. 자립 전담 기관 역시 서울·부산·경기·강원·충남·전남·경북·제주 등 8개 시도에서만 운영되었다. 자립정착금은 아동양육시설에서 만 18세에 퇴소하는 청년에게 매우 중요한 돈이다.
그러나 금액이 지역마다 다를 뿐 아니라, 졸업과 동시에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시기마저 제각각이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퇴소 시점과 정착금 지급 시점 사이의 공백이 길었던 지자체가 종종 있었다. 그 사이 청년들은 고시원을 전전하거나 먼저 퇴소한 선배에게 얹혀사는 등, 아무런 대책 없이 바깥으로 내몰렸다.
당시 LH 전세 임대·매입임대 등 공공임대주택 지원과 주거지원 통합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정보가 부족하여 이를 이용하는 청년은 한정적이었고 주거비와 사례관리 지원은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결국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한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공백을 견뎌야 했다.
가장 취약한 틈
문제는 퇴소 시기와 자립정착금 지급 시기가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시기가 가장 취약하다. 선배를 통해 정착금이 나올 때까지 잠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시기에 잘못된 선배를 만나 범죄에 빠지거나 금전적 위험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친구
2020년, 막 스무 살이 되어 보육원을 퇴소한 A는 갈 곳이 없어 걱정이 많았다. A는 어릴 때부터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시설에서도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고, 누군가 곁에 있어 주면 그것만으로 고마워하는 편이었다. 부모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고, 퇴소하는 날 배웅 나온 어른도 없었다.
다행히 같은 보육원에서 살다가 18살에 다시 연락이 닿은 친구 B의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기로 했다. B는 17살에 아버지가 찾아와 보육원에서 중도 퇴소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B가 공부하기보다 돈을 벌기만을 원했고, 어린 B를 일터로 내몰며 폭력을 행사하였다. 결국 B는 그 아버지를 피해 가출하여 홀로 살아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중도 퇴소하면 별도의 정착금을 받을 수 없었기에, B는 가출청소년으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월세방을 겨우 유지했다. 보육원에 남았다면 그에게도 자립을 위한 지원이 닿았겠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 모든 것보다 앞서 그를 제도 바깥으로 끌어냈다.
A는 부모가 모두 없었고 혼자 살아가는 일이 두려웠던 터라, 정착금이 나올 때까지 함께 지내도 된다는 B의 말이 그저 고마웠다. 세상에 자신을 받아 준 사람이 B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그때의 A에게는 무엇보다 컸다. A는 여느 자립 준비 청년처럼 개인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B의 집은 작은 평수였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대부분 B의 지인이었다. 알고 보니 B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좁은 방이었지만 북적거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A는 B의 집에 살며 공과금을 부담했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A가 다니던 식당은 폐업했고, 마침 자립정착금 500만 원이 입금되었다. 처음 손에 쥔 목돈이었기에 A와 B는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A와 B, 그리고 B의 지인들까지 A의 정착금을 쓰기 시작했고, 그 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휴대폰 아홉 대
그 무렵 B에게 급하게 돈이 필요해졌다. 알고 보니 B는 중고 거래로 소액사기 행각을 벌였고, 그것이 경찰에 접수된 것이었다. B에게는 합의금이 필요했고, A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합의금은 1천만 원. 그 돈이 A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자 B의 지인이 A에게 방법을 일러주었다. B의 이름으로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이었고, 개통된 휴대폰은 모두 아홉 대였다. 소위 '휴대폰 깡'이었다.
A는 B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갈 곳 없던 자신을 받아준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아이에게, 유일한 울타리가 내미는 부탁은 거절이 아니라 관계를 잃는 일과 같았다.
이 휴대폰들은 소액결제와 기프티콘 등에 사용되었고, A에게는 순식간에 약 1천만 원의 빚이 생겼다. B는 반드시 나누어 갚겠다고 약속했고, A는 그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약속이 깨지는 데에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B가 A의 신분증을 훔쳐 불법 대출을 받은 뒤, 그 돈으로 A에게 빚을 갚은 것이다.
1천 400만 원이 아니라 1억
A는 B를 경찰에 신고하고 도망쳤지만, 작은 지방 소도시에 살던 A가 B를 피해 달아날 곳은 없었다.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A는 이미 B를 피해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한 상태였다.
서울로 올라온 A의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1천 400만 원가량으로 알고 있던 빚은 실제로는 1억이 넘었다. 도용된 신분증으로 B는 불법 대출은 물론 각종 중고 거래 사기, 불법 도박 사이트 등 여러 곳에 A의 이름을 사용했다. A의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폰까지 있었으니, 각종 사이트에 가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B는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그 이유가 모두 A 때문이라며 분노의 화살을 A에게 돌렸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여 협박했고, 필자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A를 찾아내라며 협박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A는 B의 집요한 협박과 단 1원도 써보지 못한 빚으로 인해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자해뿐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시도도 여러 차례였다. 결국 B가 구속되며 협박은 멈췄지만, A에게는 빚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었지만, 그 빚이 모두 불법임을 입증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A는 어떤 경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사이 주변 어른들도 조금씩 지쳐갔다.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자주 자해하는 A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25년, 스물다섯이 된 가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정리되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2020년 새로운 출발로 설레던 그의 인생은 5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그를 이토록 극한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외로움이었을까, 아니면 무른 성격 탓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퇴소 후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어른들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저 운이 나빠 B를 만난 탓이었을까.
그러나 B를 나쁜 선배로 만든 것은 B 혼자가 아니었다. 공부해야 할 나이에 아버지가 그를 시설에서 끌어내 돈벌이로 내몰았고, 폭력으로 그를 길들였다. 시설에 남았다면 B에게도 정착금과 자립 지원이 닿았겠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 모든 것보다 힘이 셌다.
B는 제도의 공백에 빠진 것이 아니라, 나쁜 부모의 손에 제도 바깥으로 끌려 나간 것이다. 물론 그가 저지른 사기와 협박, 신분 도용은 명백한 그의 죄다. 다만 그 죄가 자라난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짚어두어야 한다.
한 명은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아 무너졌고, 한 명은 붙잡지 말아야 할 손에 붙들려 망가졌다. A와 B를 무너뜨린 자리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지켜 줄 어른이 없었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그의 팔에는 여전히 자해의 상처가 가득하다. 그 상처가 언젠가는 지워지기를 기도한다. 다행히 올해 초부터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내일배움카드로 무언가를 배워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모든 일을 겪은 자신을 미워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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