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가 만든 문학·미술·음악 창작 경계에 선 저작권, 그 주인은 누구인가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10-15 10:12:03 댓글 0
- 세계는 ‘사람의 기여’와 ‘배움의 대가’를 묻고 있다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가을 저녁의 골목을 그려 달라고 입력한다. 화면에는 젖은 낙엽이 내려앉고, 오래된 창문 안으로 노란 불빛이 번진다. 그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을 부탁하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짧은 시를 청하면 누군가의 기억처럼 쓸쓸한 문장이 나타난다.

붓과 악기, 원고지 앞에서 오래 머물러야 했던 일이 이제 몇 번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 이번 시론의 주제에 맞게 기자의 사진을 AI를 통해 가을 분위기가 풍기는 폴세잔풍 그림으로 그려 봤다.ⓒ데일리환경 정진욱 기자

그림은 아름답고 음악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데 작품 아래 이름을 적으려는 순간, 손이 멈춘다. 이 풍경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문장을 입력한 사람인가, 결과를 만들어 낸 인공지능인가. 아니면 그 인공지능이 배워 온 수많은 작가와 화가, 음악가의 시간이 함께 놓여 있는가.


AI 예술을 둘러싼 저작권 논의는 바로 이 멈춤에서 시작된다.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법이 인정하는 창작자의 자리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눈물을 불러오는 노래라고 해서 저작권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며, AI를 사용했다고 해서 사람이 만든 부분의 권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한국의 기준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에 중심을 둔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5년 6월 발간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 역시 AI 산출물과 인간이 창작한 표현을 구분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사람의 창작적 기여 없이 자동으로 생성된 결과물과, AI를 도구로 활용해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은 같은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를 문학에 대입하면 차이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이별에 관한 시를 써 달라’는 요청으로 나온 문장을 그대로 발표하는 경우와, 사람이 자신의 경험으로 시를 쓰고 AI의 제안을 참고해 표현을 다듬는 경우는 창작의 과정이 다르다.

소설에서도 작가가 직접 완성한 문장과 독창적인 구성은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AI가 자동 생성한 대목까지 모두 자신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과 음악에서도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화가가 직접 그린 밑그림과 구체적인 표현을 AI로 발전시켰다면 인간의 창작이 결과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음악에서는 사람이 쓴 가사와 선율, 창작성이 있는 편곡 등을 나누어 살펴야 한다. 결과물 하나에 인간의 창작과 기계의 산출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저작권청도 인간이 만든 표현이 AI 결과에 드러나거나, 사람이 결과물을 창작적으로 수정·배열한 경우를 보호 가능성이 있는 유형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AI 작품의 저작권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조건이 붙는다. 한국에서는 인간이 창작한 부분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창작적 기여가 없는 자동 산출물까지 일반적인 인간 저작물처럼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전부 마련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한 상태라기보다, 기존 저작권 원칙을 적용하면서 새로운 작업 방식에 맞춰 기준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저작권 등록 또한 창작 자체를 대신하지 않는다.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 AI가 만든 모든 부분에 인간의 저작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인간의 창작을 중심에 놓는다. 미국 저작권청은 2025년 1월 보고서에서 AI를 창작의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저작권 보호를 막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프롬프트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결과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보고서는 AI 자동 생성물에 별도의 보호를 부여하기 위한 법 개정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기준은 창작에 들인 정성을 무시하겠다는 뜻과는 다르다. 수백 번 명령을 고치고 밤새 결과를 비교한 수고는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저작권은 노력의 양만으로 생기는 권리가 아니다.

사람이 최종 표현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그 결정이 작품에 어떤 독창적인 모습으로 남았는지를 묻는다. 긴 주문서와 직접 완성한 문장 사이에는 여전히 법적 거리가 있다.

그 거리의 측정법은 세계에서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중국 베이징 인터넷법원은 2023년 AI 생성 이미지 사건에서 이용자의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살펴 저작권을 인정했다. 법원은 프롬프트와 매개변수 설정, 수정과 최종 이미지 선택 등에 나타난 지적 기여를 판단에 반영했다.

AI 자체를 저작자로 인정한 판결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사례를 중국에서는 모든 AI 이미지에 저작권이 생긴다는 뜻으로 넓힐 수도 없다. 특정 사건에서 인간의 기여를 인정한 판단이다.

일본 문화청 역시 AI가 자율적으로 만든 결과물과 사람이 AI를 도구로 사용한 창작을 구별한다. 구체적인 지시와 수정 과정 등이 창작적 기여로 평가될 수 있지만, 명령이 길거나 생성 횟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보호가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결국 화면 밖에 있던 사람의 의도가 화면 안에서 어떤 표현으로 구현됐는지를 개별적으로 살피는 접근이다. 영국은 또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기존 법에는 인간 저작자가 없는 컴퓨터 생성 저작물에 대해 제작에 필요한 준비를 한 사람을 저작자로 보는 별도 규정이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이 보호의 실질적 효용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해당 규정의 폐지를 제안했다.

이는 이미 폐지가 시행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존 보호 규정을 두고 정책 방향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보고서는 인간의 창작성이 담긴 AI 보조 작품의 보호는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세계의 논의는 단순한 찬성과 반대의 대결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나라는 인간의 통제 범위를 엄격하게 살피고, 어떤 법원은 프롬프트와 반복 수정에 나타난 개성을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공통된 질문은 남는다. 기계가 만든 표현에 권리를 줄 것인가, 사람이 기계를 통해 구현한 표현에 권리를 줄 것인가. 그러나 작품의 주인을 찾는 일만으로 논의가 끝나지는 않는다. AI가 시를 쓰기 전 읽었던 시, 그림을 그리기 전 접했던 이미지, 음악을 만들기 전 학습했던 음원에도 누군가의 권리가 놓여 있다. 완성된 결과물의 보호 여부와 학습에 이용한 기존 작품의 적법성은 서로 다른 문제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6년 2월 AI 학습에 관한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했다. 이는 학습이라면 모든 이용이 허용된다는 포괄적인 허가증이 아니다. AI가 기존 저작물을 이용하는 방식에 현행법의 공정이용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안내하는 작업이다.

기술이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해서 그 문 너머의 작품들이 모두 주인 없는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학습 과정의 투명성과 권리 존중을 제도에 담고 있다. AI법에 따라 범용 AI 모델 제공자는 저작권 준수 정책을 마련하고, 권리자의 권리 유보를 존중하며, 학습에 사용한 콘텐츠의 충분히 상세한 요약을 공개해야 한다.

적용 시점은 모델의 출시 시기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 규정이 AI 결과물에 저작권을 일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지에 관한 의무다.

음악에서는 권리의 층이 더욱 복잡해진다. 노래의 가사와 곡에 관한 권리, 녹음과 실연에 관한 권리, 특정인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문제는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AI가 만든 곡’이라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국 정부도 AI 생성 음악·영상의 녹음물 등 보호 문제를 인간의 창작에 관한 논의와 구별하고, 목소리와 외모를 복제하는 디지털 복제물의 보호 방안을 따로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이 여러 질문을 함께 다루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창작한 표현은 충분히 보호하면서, 기계가 자동으로 쏟아 낸 결과에 과도한 독점권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를 세울 필요가 있다.

동시에 AI가 배운 작품의 출처와 이용 조건을 더 잘 드러내고, 허락과 보상이 필요한 곳에서는 창작자와 기술 기업이 거래할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 이는 아직 세계가 합의한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지금의 제도와 논의에서 읽을 수 있는 과제다.

창작 현장에도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을 것이다. 완성본만 보관하던 작가는 초고와 수정본을 함께 남기고, 화가는 밑그림과 편집 과정을, 음악가는 직접 쓴 가사와 선율의 변화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작업을 서류로 바꾸는 일이기보다, 빠르게 지나간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을 되찾는 일에 가깝다.

AI는 표현의 문턱을 낮춘다. 그림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풍경을 펼쳐 주고,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마음속 선율을 들려준다. 그 가능성은 소중하다. 동시에 그 도구를 가능하게 한 오랜 인간 창작의 시간도 소중하다. 새로운 창작의 자유가 이전 창작자의 생계를 지우는 방식으로만 커져서는 문화의 토양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화면 속 가을은 몇 초 만에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을을 아름답고 쓸쓸하게 느끼게 된 시간은 몇 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낙엽 앞에서 시를 썼고, 누군가는 저녁빛을 붙들려고 캔버스 앞에 섰으며, 누군가는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AI 시대의 저작권은 그 시간들 사이에 놓일 새로운 약속이다.

기술을 통해 표현할 기회를 얻은 사람과, 기술이 배울 세계를 먼저 만들어 온 사람이 함께 다음 작품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 우리가 작품 아래 적어야 할 이름을 찾는 일은, 결국 그 이름 뒤에 놓인 사람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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