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보리·콩·팥·조·귀리의 조합
- 건강 비결은 ‘기적의 레시피’가 아니라 통곡물과 콩의 식이섬유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되….” 구약성경 에스겔 4장 9절에는 여러 곡물과 콩을 한데 섞어 빵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이를 ‘에스겔 빵’이라 부르며 당뇨병 환자에게 좋은 성경 속 건강식으로 소개한다. 송편과 전, 갈비찜, 잡채처럼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은 음식이 한 상에 오르는 추석을 앞두고 더욱 눈길이 가는 식단이다.하지만 성경 속 에스겔 빵은 건강 증진을 위해 내려진 특별식이 아니었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포위와 그로 인한 식량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제한된 곡식을 섞어 만든 ‘고난의 배급식’에 가깝다. 당시 좋은 곡식과 거친 곡물을 가리지 않고 한데 모아야 했던 궁핍한 상황이 담겼다.그렇다고 이 조합의 영양학적 가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밀·보리·조·귀리 같은 통곡물과 콩·팥 같은 콩류에는 흰쌀이나 정제 밀가루보다 식이섬유와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다. 식이섬유는 탄수화물의 소화와 흡수 속도를 늦춰 식후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것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통곡물과 콩류를 혈당 관리에 유익한 식이섬유 공급원으로 설명한다. 추석 밥상에 적용하는 ‘에스겔식 원칙’에스겔 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통곡물과 콩을 골고루 섞고 양을 조절하는 원칙을 추석 식탁에 적용하는 편이 현실적이다.흰쌀밥은 보리·귀리·콩을 넣은 잡곡밥으로 바꾸되 평소 정해둔 밥의 양을 넘기지 않는다. 송편은 간식이 아니라 탄수화물 식품으로 계산해야 한다. 송편을 먹었다면 그만큼 밥이나 다른 떡의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전과 잡채, 갈비찜을 한꺼번에 넉넉히 담기보다 접시의 절반은 나물과 채소, 4분의 1은 생선·두부·살코기, 나머지 4분의 1은 잡곡밥 등 탄수화물 식품으로 구성한다. 식혜·수정과·과일주스 대신 물이나 무가당 차를 선택하고, 식후에는 가족과 함께 10∼20분가량 가볍게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제품으로 판매되는 ‘에스겔 빵’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형태에는 밀과 보리가 들어가므로 글루텐 알레르기나 셀리악병이 있는 시민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신장질환을 함께 앓고 있다면 잡곡과 콩의 칼륨·인 함량을 고려해 의료진과 섭취량을 상의해야 한다.성경 속 에스겔 빵이 전하는 핵심을 현대 식탁의 언어로 옮기면 ‘많이 섞어 먹으면 혈당이 내려간다’가 아니다. 정제된 곡물 대신 통곡물과 콩을 선택하고, 좋은 음식이라도 정해진 양만 먹으라는 것이다.풍성함을 음식의 가짓수와 양으로만 채우기 쉬운 추석이다. 올해 명절에는 성경 속 한 조각의 잡곡빵처럼, 절제와 균형을 함께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당뇨병 치료제나 인슐린을 사용하는 시민은 명절에도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어서는 안 된다. 개인별 탄수화물 섭취량은 혈당 상태와 약물, 합병증에 따라 다르므로 담당 의료진의 지침을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