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O 의미 유사도 0.70로 PhenoBERT 0.58 웃돌아…추출보다 ‘표준화·우선순위화’가 성능 향상 핵심
연구진 “진단 대체 아닌 인간 검토형 도구”…실제 진단 정확도·진단기간 단축 효과는 전향적 검증 필요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희귀질환 환자의 방대한 임상기록에서 증상과 징후를 찾아 표준화하고, 진단에 중요한 표현형을 우선순위까지 매기는 인공지능(AI) 프레임워크가 실제 의료기록을 이용한 외부검증에서 기존 딥러닝 방식보다 높은 성능을 보였다. 미국 밴더빌트대 메디컬센터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한 ‘RARE-PHENIX’를 개발해 희귀질환 진단 과정에서 가장 많은 수작업이 필요한 표현형 정리를 자동화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 결과는 15일 국제학술지 npj Digital Medicine에 공개됐다. 희귀질환 진단에서는 환자가 보이는 신체적·임상적 특징을 Human Phenotype Ontology(HPO)라는 표준용어로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진료기록에는 같은 증상이 다양한 표현으로 기록되고, 중요한 특징과 일반적인 증상이 뒤섞여 있어 전문가가 일일이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든다.RARE-PHENIX는 이 과정을 세 단계로 처리한다. 먼저 LLM이 자유서술형 임상노트에서 표현형을 추출하고, 다음 단계에서 검색증강생성(RAG)을 이용해 표현형을 HPO 표준용어로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지도학습 기반 순위모델이 진단에 더 중요한 HPO 용어를 앞쪽에 배치한다.연구진은 단순히 증상을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는 ‘추출→표준화→우선순위화’ 전체 흐름을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구현했다.모델 개발에는 미국 미진단질환네트워크(UDN) 11개 임상기관의 환자 2671명 자료가 사용됐다. 외부검증에는 훈련에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밴더빌트대 메디컬센터 환자 143명의 실제 임상노트 1만6357건을 활용했다. 데이터 분할은 환자 단위로 이뤄져 훈련과 검증 사이의 정보누출을 막았다. 검증 대상 기록은 진료기록이 67.8%로 가장 많았고 상담기록, 수술·시술기록, 영상기록 등이 포함됐다.외부검증에서 RARE-PHENIX는 기존 표현형 추출모델인 PhenoBERT보다 전반적으로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 임상의가 직접 정리한 HPO 용어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상위 50개 표현형에서 가장 높은 성능을 낸 LLaMA-2-70B 기반 구성의 HPO 의미 유사도는 약 0.70으로, PhenoBERT의 약 0.58을 웃돌았다.연구진은 정밀도·재현율·F1 점수에서도 RARE-PHENIX가 비교모델보다 일관되게 높은 성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성능 향상에는 단순한 LLM 추출 능력보다 표준화 과정이 크게 기여했다. 연구진이 각 모듈을 하나씩 제거해 성능을 비교한 결과, 자유문장을 HPO 용어로 바꾸는 표준화 단계가 추가되자 LLaMA-2-70B 구성의 정밀도는 0.25에서 0.43으로, F1 점수는 0.34에서 0.50으로 개선됐다. 재현율은 0.70에서 0.71로 큰 변화가 없어, 표준화가 ‘더 많은 증상’을 찾기보다 불필요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줄이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오류 분석에서도 실제 임상문서의 복잡성이 주요 변수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놓친 표현형 271건을 수작업으로 검토한 결과 97%는 명확한 증상을 모델이 못 찾은 경우가 아니라, 증상이 간접적 표현이나 문맥 속에 기록됐거나 진료노트에 아예 명시되지 않은 경우였다. 반면 명확히 기록된 HPO 표현을 실제로 추출하지 못한 사례는 3%였다. 이는 의료 AI의 성능이 모델 자체뿐 아니라 진료기록의 표현방식과 데이터 품질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다만 이번 결과를 곧바로 ‘AI가 희귀질환을 진단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 대상은 복잡한 미진단 환자가 집중된 UDN 코호트로 일반 유전질환 진료현장을 모두 대표하지 않으며, 가장 높은 성능은 700억개 매개변수 규모의 대형 모델에서 나왔다. 또 임상의가 정리한 HPO 용어 자체에도 누락이나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후향적으로 표현형 정리 능력을 검증한 것으로, 실제 진단정확도를 높이거나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연구진도 RARE-PHENIX를 의사를 대체하는 자동진단시스템이 아니라 ‘인간 검토형(human-in-the-loop)’ 도구로 제시했다. 희귀질환 진료에서는 환자의 오랜 진료기록을 구조화하는 과정이 병목으로 꼽혀 왔다.앞으로 전향적 임상시험에서 의료진의 작업시간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진단 후보의 정확도가 높아지는지, 다양한 의료기관과 환자군에서도 같은 성능이 유지되는지가 임상 도입의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