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법은 2035년 신차 100% 감축…EU 집행위 90%안보다도 낮춰
저탄소 철강 7.5% 보완 인정…회원국과의 최종 협상 남아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유럽연합(EU)의 2035년 신차 이산화탄소(CO₂) 감축 규제가 다시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의회 내 주요 정당그룹이 승용차의 2035년 CO₂ 감축 목표를 2021년 대비 87.5%로 낮추는 타협안에 합의했다.다만 이번 합의는 유럽의회의 최종 입장이나 EU 법률 개정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정당그룹 내부 승인과 유럽의회 공식 입장 확정, 회원국을 대표하는 EU 이사회와의 협상이 남아 있다. 20일 로이터가 입수한 합의문에 따르면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 중도 성향 리뉴 유럽(Renew Europe)은 승용차 제조사가 2035년 신차 평균 CO₂ 배출량을 2021년 기준보다 87.5% 줄이는 방안에 뜻을 모았다. 여기에 EU에서 생산된 저탄소 철강을 사용할 경우 최대 7.5%의 보완 크레딧을 인정하는 구조다. 승합차는 2035년 80% 감축 목표가 제시됐다.현행 100%에서 집행위 90%, 의회 타협안은 87.5%현재 EU 법은 훨씬 강하다. EU 집행위원회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행 규정은 2035년 이후 새 승용차와 승합차의 EU 평균 CO₂ 배출량을 2021년보다 100% 줄이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신규 차량의 배출 기준을 제로로 만드는 구조다.그러나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자동차 산업 지원 패키지를 내놓으면서 승용차의 2035년 배기관 배출 감축 목표를 90%로 낮추고, 나머지 10%는 EU산 저탄소 철강이나 e-연료·바이오연료 사용 등으로 보완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이번 유럽의회 정당그룹의 타협안은 집행위원회안보다 한 단계 더 완화된 수준이다. 승용차의 직접 감축 비율을 90%에서 87.5%로 낮추고, 저탄소 철강 사용을 통해 일부를 보완하도록 했다. 2030년 목표는 승용차 55% 감축을 유지하되 승합차는 집행위원회가 제시했던 40%보다 낮은 35% 감축안이 논의되고 있다. 2030년 실적을 2029~2031년 평균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성도 포함됐다.규제 완화가 곧 내연기관차의 전면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회 협상안에는 재생가능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을 무배출 차량으로 인정할 수 있는 방안과 소형·고효율 전기차에 추가 크레딧을 주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EU 집행위원회안 역시 전기차와 수소차를 중심축으로 두면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일부 내연기관차가 2035년 이후에도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 유연성을 넓히는 방향이다.전기차 전환 속도와 산업 경쟁력 사이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문제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앞서 2035년 승용차 CO₂ 감축 목표를 90%로 낮추되 별도의 보완 의무를 두지 않는 공동 입장에 합의했다. 유럽 자동차업계는 중국 전기차 업체와의 경쟁, 생산비 상승, 전기차 전환 비용을 이유로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반면 환경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목표 완화가 전기차 투자 속도를 늦추고 EU의 중장기 기후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비판한다.시장 흐름은 규제 논의와 별개로 전동화 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8월 EU의 배터리 전기차 신규 등록은 164만1333대로 전체 신차의 21.7%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8%에서 크게 늘었다. 하이브리드차는 36.6%,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10%였다. 규제 강도가 다소 낮아지더라도 전기차 비중 확대 자체가 멈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한국 자동차·배터리 공급망도 영향국내 자동차·배터리 업계에도 이번 협상은 중요한 변수다. 2035년 규제가 완화되면 유럽 시장에서 완전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느려지고 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의 수요가 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기차용 배터리와 관련 부품에 집중해 온 공급망에는 성장 속도와 투자 회수 시점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EU 최종 법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 전략 변화까지 단정하기는 이르다.향후 핵심은 유럽의회 내부 합의가 공식 입장으로 확정되는지와 회원국들이 어느 수준의 목표를 받아들이느냐다. 현재 법정 기준은 여전히 2035년 100% 감축이며, 이를 바꾸려면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이번 타협안은 EU 자동차 기후정책이 완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신호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제조사 의무를 바꾸는 최종 규정으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