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젊은시절의 정주영)정주영은 여러 번 가출을
하고 나서야 서울로 올라와불안한 막일꾼 노릇이 후회
돼 쌀가게에 취직을 했다.
고향을 떠나 아버지가 소 팔아 번 돈을 몰래 가지고 도망 나왔지만 수십년이 지나 이자를 붙여 소떼 1001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세기의 이벤트를 보여줬던 고 정주영 회장. 부정적 의견을 가진 직원들에게 항상 “해보기나 했어?”라며 핀잔을 주던 그는 성실성, 근면성, 끈기, 확신 등으로 이미 우리나라 산업시대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주영 탄생 100년, 한국경제의 초석을 다진 ‘왕회장’ 정주영의 불꽃같았던 삶을 재조명해본다.
여러번의 가출, 소 판 돈 훔쳐 기차 타고…
“그리운 고향 통천…. 정이 많은 우리 어머님은 자식 사랑도 유난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장남인 나에 대한 정성과 사랑은 끔찍하셨다. 우리 어머님은 집에서 한밤중에 장독 위에 물 떠놓으시고 치성 드리는 기도 말고도 어디를 가시든, 큰 바위를 보시든, 큰 물을 보시든, 산을 보시든, 나무를 보시든, 일념으로 나 잘되라는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나는 잘난 아들 정주영이를 낳아놨으니 산신님은 그저 내 아들 정주영이 돈을 낳게 해주시오.’ 이 한 가지 뿐이었다고 한다.”(이 땅에 태어나서 중에서)
1915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농사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정주영의 아버지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부지런한 농사꾼이었고, 정주영을 일등 농사꾼으로 키워낼 심산이었다.
이에 육남매 중 장남이었던 정주영은 10살부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농사일로 하루종일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내심 ‘이대로라면 농사꾼으로 늙어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농사꾼의 삶을 못마땅해 했고, 첫 번째 가출을 시도한다.
철도 공사판에서 성인들도 하기 힘든 막노동과 손수레로 흙을 나르고 품팔이를 하며 지냈다. 소년 정주영에게는 힘이 부쳤지만 도시에서의 초라한 자신을 돌아보며 반드시 성공하리란 다짐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소문 끝에 찾아오신 아버지에게 이끌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주영은 여전히 가출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이듬해 봄이 되자 다시 서울을 향해 집을 나서게 됐다. 다시 잡혀 왔지만 농촌을 떠나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소년 정주영은 아버지가 궤짝 속에 넣어둔 소 판 돈을 훔쳐 기차를 타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지만 또다시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막일부터 시작해 쌀가게 주인으로
그러나 정주영은 19살이 되던 해 다시 고향을 떠났고, 인천부두에서 하역 일과 막노동 등 무엇이든 달라붙어 일을 했다.
정주영은 여러 번 가출을 하고 나서야 쌀가게 일을 하게 됐는데, 서울로 올라와 불안한 막일꾼 노릇이 후회 돼 쌀가게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비로소 안정된 직장을 얻은 셈이다.
처음에는 쌀 한가마니도 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세끼 식사를 주는 조건하에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정주영은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신용을 얻었고 일개 배달꾼에서 쌀가게 주인이 된다. 정주영의 나이 스물세 살 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당시 주인아저씨는 돈은 많아도 배운 게 없어서 장부를 쓸 줄을 몰랐고, 잡기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적어놓으면 아들이 저녁에 와서 거래처별로 대충 옮겨 적고 재고 파악만 하는 정도였다”며 “6개월쯤 되었을 때 주인아저씨가 아들을 제치고 나한테 장부 정리를 맡겼다. 그만큼 나를 신임한다는 뜻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정주영은 가게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꾸고 인근 학교 기숙사에 쌀을 대면서 조금씩 돈을 벌어 나갔다. 당시 경일상회의 수익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일제가 쌀의 자유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등 쌀 배급제를 실시하자 경일상회도 문을 닫게 된다.
어린 시절 고향을 박차고 뛰어나와 온갖 잡일을 하며 ‘정직’과 ‘깡’으로 버티던 젊은 시절의 정주영은 훗날 젊은이들에게 의지를 심어줬고, 숱한 역경 속에서도 도저히 포기할 줄 모르는 굴지의 도전정신으로 현대그룹을 세운 그의 열정은 모든 기업인들이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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