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장’ 정주영 탄생 100년 기획 시리즈-3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15-11-29 14:59:10 댓글 0
“이봐! 해보기나 했어?” 맨주먹으로 이룬 ‘현대 신화’
▲ 1.주베일산업항공사현장에서(76년)

고향을 떠나 아버지가 소 팔아 번 돈을 몰래 가지고 도망 나왔지만 수십년이 지나 이자를 붙여 소떼 1001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세기의 이벤트를 보여줬던 고 정주영 회장. 부정적 의견을 가진 직원들에게 항상 “해보기나 했어?”라며 핀잔을 주던 그는 성실성, 근면성, 끈기, 확신 등으로 이미 우리나라 산업시대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주영 탄생 100년, 한국경제의 초석을 다진 ‘왕회장’ 정주영의 불꽃같았던 삶을 재조명해본다.


조선소 짓고 ‘중동 붐’


젊은 시절 쌀가게로 첫 사업을 시작해, 현대건설로 주목 받기 시작한 정주영에게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세우는 꿈도 있었다.


위험부담은 크지만 조선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업종이었다. 현대건설은 종합 건설사로서 기계나 전기 계통의 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을 활용해 배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정주영이었다.


그러나 조선소 건설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당시 국내 외환 사정은 아주 열악한 상태였다. 정주영 회장 혼자의 뚝심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자금이 너무나 많이 필요했다. 사업계획서는 만들어졌지만 아직 한 번도 배를 만들어보지 못한 대한민국으로선 선박 컨설턴트들에겐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였다.


정주영은 약이 올랐고, 순간 기지가 발동했다. 정주영은 문득, 바지 주머니에 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난 것.


정주영은 주머니에서 거북선 그림의 지폐를 꺼냈고, 선박컨설턴트 회사 A&P 애플도어 찰스 롱바톰 회장에게 “이 지폐에 그려진 것은 거북선이란 배인데 철로 만든 함선이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부터이지만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 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을 물리쳤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바로 이 대한민국 지폐안에 담겨있다”며 조금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태도로 그를 설득했다.


수많은 프레젠테이션과 완벽한 보고서에도 ‘NO’를 외치던 롱바텀 회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창의력을 발휘하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이 정주영의 현대조선소 건설이었다.


이후 현대는 ‘중동 붐’을 일으키며 오일 달러를 벌어들였고, 정주영 회장의 오랜 꿈이었던 자동차 사업은 1966년 현대자동차를 설립, 1976년 마침내 최초의 국산 모델인 포니를 개발, 1986년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차를 수출하는 등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맞게 된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멈출 수 없었고 현대그룹은 수평, 수직 확장을 해나가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전자·중화학·금융업 등 거의 모든 업종에도 진출해 현대그룹을 성장시켰다.


1977년부터 한국 재계를 이끄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아 5번 연임하기도 한 그는 1987년 현대그룹 회장직을 동생인 정세영에게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정주형 회장은 자수성가형 기업가이지만 정부 통치아래 가장 시달린 기업인으로도 통한다. 정치 현실이 경제인들을 괴롭혔고, 기업은 위축되는 사례가 많았다. 훗날 정주영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함으로써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도 경제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아픔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여진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 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됐다. 정주영 회장 하면 생각나는 이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맨손으로 굴지의 대기업 신화를 일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001마리 소떼 방북을 통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다. 말년엔 정당을 만들고 대통령 선거까지 도전하며 정계진출까지 노렸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던 그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사생활에서는 물론, 산업 현장이나 세계 어디에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던 대포가 큰 사나이였다.


그는 소학교 교육밖에 받아본 적이 없으면서도 풍부한 경험과 비범한 판단력으로 어느 누구와 맞붙어도 논리적으로 밀리지 않는 식견을 갖춘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가족과 회사 임직원은 물론이고 고위 경제관료, 세계은행 관계자 등 모든 이들의 비웃음과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치부됐던 그 모든 일들을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한마디와 함께 도전에 옮겼다. 다른 기업들은 엄두도 못 내는 사업들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성공시킴으로써 한국경제 산업화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 사진(1980년대 초 코엑스전시관에서) :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건설·조선·전자·중화학·금융업 등 거의 모든 업종에 진출해 현대그룹을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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