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발이 묶인 선박 탓에 세계 곳곳에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이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충분한 대책마련 없이 오로죄 금융 잣대로만 판단해 벌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또한 임기응변식 대책 마련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4일 한진해운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가압류·하역 거부 등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선박은 모두 68척(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7척)이다. 이는 한진해운이 운영해온 선박 141척(컨테이너 97척ㆍ벌크선 44척)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이 중 한진로마호의 경우 싱가포르 항구에서 가압류됐다. 나머지 67척도 한진해운이 유류비 등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중국, 스페인 등 23개국 44개 항만에서 입출항이 금지된 상태다.
당장 배에 짐을 실은 화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북미에서 3분기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소비가 급증하는 시기로 유통·해운업체들이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때다. 특히 아시아·북미 항로에서 점유율 3위인 한진해운의 선박 운항 중지 사태로 배 위 상품들은 바다 위에 무기한 떠있게 됐다.
당장 선박을 통해 물건을 보내야하는 기업들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체선박을 뒤늦게 구하고 있으나 다른 선사들이 가격을 높이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최근 한진해운과 예약된 물량 전부를 취소했다. ‘국제가전전시회(IFA) 2016’에 참석한 조성진 LG전자 사장은 “미국 판매 비중이 30%인 LG전자는 하반기 판촉 행사가 많은데 현재 미국 내 재고로는 이를 소화하기 어렵다”며 “한진해운을 대체할 물류 업체를 찾으려 해도 쉽지 않아 상황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한진해운은 선박압류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현재 미국 등 43개 주요 국가들에게 법원 압류중지명령을 신청한 상태다. 압류중지명령이 발동되면 선박압류를 피할 수 있어 추가 물류 대란 확산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스테이오더를 신청하더라도 결정이 나는데 1~2주 시간이 걸릴텐데, 당장 하루 이틀이 더 중요한 골든타임”이라며 “화주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피해액은 소송 등으로 급속도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 ‘책임론’ 발발
물류대란이 일자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시 관련 산업 전반에 미칠 충격을 경고했음에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해운업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 방안이 검토된 지 10개월이 지났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관련 부처나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인 산업은행, 해양수산부도 엇박자를 내면서 각자 목소리만 내거나 책임 회피를 위해 몸을 사렸다는 설명이다.
한진해운 자율협약 종료를 앞두고 추가지원 불가론을 발표했을 당시 해운업계는 법정관리 시 예상되는 피해 규모를 미리 제시한 바 있다.
업계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전 세계 120만개 컨테이너 운송이 멈춰 물류대란이 발생하고, 140억달러(약 1조5천600억원)에 달하는 화물 지연에 대한 클레임이 속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법정관리 후 청산하면 회사 매출 소멸, 환적화물 감소, 운임폭등 등으로 매년 17조원의 손실과 2천300여개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 측은 “손실이 17조원이라는 분석도 있다는데 그건 너무 극단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과거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의 법정관리 사례를 한진해운에 적용한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TX팬오션은 컨테이너선 규모가 5%밖에 안됐고 대한해운은 완전히 벌크업 사업만 했다”며 “한진해운은 95%가 컨테이너선 사업인데 두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법정관리를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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