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또다시 정경유착 의혹에 휘말렸다. 보수 우익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의 중심에 또 등장한 것. 특히, 표면적으로는 사회 환원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최근 재벌기업들이 공익 사업비를 축소해온 것을 감안할 때 ‘자발적 출연’이 아닌 압박에 못 이겨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한때 정치권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재계 본산’으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국정교과서, 어버이연합 차명계좌 지원 등 연이은 부적절한 정치 개입 등으로 일각에서는 해체설도 나오고 있다.
전경련 ‘물주’로 전락됐나.
재벌 오너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또 의혹의 들러리로 떠올랐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설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2개의 재단법인에 1000억여 원의 자금을 지원한 역할이다. 한국의 문화와 스포츠를 홍보하겠다는 사회공헌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를 위해 전경련이 물주가 된 형태다.
이러한 의혹에 지난 9월23일 임원·기자단 세미나에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재단의 필요성에 대해 기업들은 물론 청와대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여러 기업들이 이런 의견을 제시해 두 재단을 전경련이 실무를 주도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와 이건희 회장이 454억 원,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와 정몽구 회장이 328억 원, SK그룹 계열사와 최태원 회장이 211억 원, LG그룹 계열사와 구본무 회장이 178억 원 등이다.
겉으로는 각 재벌 기업과 총수들이 곳간을 풀어 사회 환원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지만 이는 지난해 재벌그룹의 공익재단들이 공익 사업비를 축소한 것과는 상반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자기 기업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익사업의 규모를 줄인 재벌기업들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청년희망재단 3개 재단에 1857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한 셈이다.
앞서 전경련이 최근 1년 사이 정치현안과 부적절하게 연루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올해 1월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노동5법 등을 통과시키기 위해 ‘경제활성화를 위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 전경련과 주요 재벌 기업 임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직접 서명 행사장에 나란히 있는 모습은 화재가 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전경련이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차명계좌를 통해 억대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어버이엽합은 박근혜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집회가 열리면 같은 장소에서 맞불집회를 여는 등 현 정부에 우호적인 활동을 해왔다는 특징이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에서도 전경련은 등장한다. 전경련의 산하단체인 자유경제원이 아예 국정교과서 ‘홍보대사’로 활동한 것이다. 자유경제원은 스스로 독립적인 비영리재단이라고 주장했으나 지난해 11월 전경련에서 매해 평균 20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주고, 대통령의 노후자금을 대주는 전경련은 더 이상 경제단체라고 볼 수 없다. 정경유착의 온상이고, 비리·부패 주범인 전경련은 이제 해체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대기업들로부터 무려 774억원을 2주 만에 모금하는 등 정권실세를 호가호위하며 불경기에 허덕이는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내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창달인가”라고 물었다.
재계본산 어쩌다
전경련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 이후 재벌들이 만든 경제단체다. 시발점은 1961년 7월 17일 설립된 ‘경제재건 촉진회’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군부는 부정축재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기업인들을 구속했다.
일본에 있던 고(故)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은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한 뒤 귀국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을 풀어주는 대신 국가 산업정책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고 경제재건 촉진회가 꾸려졌다. 태생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아 정치권에 전달하는 창구인 셈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역할이 부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정책에 관한 재계의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가 돼 ‘재계의 본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0년대 외환위기 직후엔 빅딜을 주도해 위상도 높여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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