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분리배출 제도는 매우 엄격한 편이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 플라스틱·비닐·캔·유리 분류 등 세분화한 기준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준이 생활 현장에서는 직관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플라스틱이라고 해도 색상이나 재질, 부착물의 유무에 따라 배출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제품 포장에는 이를 명확하게 안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소비자는 버리는 순간이 되어서야 ‘이게 맞나?’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책임은 개인에게 넘겨지는 셈이다.
재활용 분리 기준은 지자체별로 운영된다. 이에 같은 물건이 어떤 동네에서는 재활용, 다른 동네에서는 일반쓰레기가 될 수 있다. 이사나 전입이 잦은 도시 환경에서 이러한 차이는 혼란을 키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부, 지자체, 공공기관 웹사이트에 정보가 흩어져 있고 설명은 행정 중심 용어로 작성돼 일반 시민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확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등의 수고로움이 따른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오프라인 안내가 더 신뢰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특히 시민들이 분리수거에 회의를 느끼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어차피 다 섞여 처리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불투명하다면 재활용은 ‘의무’가 아니라 ‘피로한 노동’이 된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제조 단계에서 찾는다. 라벨이 쉽게 제거되지 않는 병, 여러 재질이 결합된 포장, 분해가 어려운 구조는 분리수거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이에 최근 일부 생수 브랜드가 라벨 없는 병이나 절취선을 적용한 포장을 도입하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아직 예외에 가깝다. 재활용을 시민의 성실성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재활용되는 제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활용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분리배출 기준을 통일하고 포장 단순화 정책 그리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하고 일관된 안내다.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활용은 환경 의식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제도의 문제다. 지금처럼 복잡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다. 재활용은 시민의 양심 테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이 단순해질 때 참여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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