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4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혼자라는 두려움이 만든 틈’

노주현 칼럼리스트 기자 발행일 2026-04-13 10:38:05 댓글 0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설렘 뒤에 찾아온 현실의 벽

자립이 시작되면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년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북적이던 공간을 떠나 드디어 '나만의 방'을 갖게 된다는 설렘, 단체생활 속 여러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의 벽 중 하나는 바로 LH임대주택을 구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LH임대주택은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LH 공공임대아파트나 LH 공공분양아파트와는 결이 다르다. 청년들이 실제로 발로 뛰며 구하게 되는 집들은, 제도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코 안전하거나 쾌적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까지 우리 단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청년 A의 사례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A가 자기 집이 아닌 친구 집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이 있는데 왜 친구 집에서 자느냐고 묻자, A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LH임대주택으로 들어갈 집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부동산에서 보여준 집들은 대부분 반지하나 지층이었고, 햇볕이 잘 들지 않거나 녹물이 나오거나 바퀴벌레가 들끓는 곳뿐이었다.

A가 "정말 다른 집은 없느냐"고 묻자, 부동산 사장은 "LH임대주택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원래 다 이렇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결국 A는 그중 그나마 나은 집을 선택했다. 2층이라 햇빛은 들었지만 녹물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녹물로 씻으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A는 짐만 그 집에 두고,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으며, 샤워를 할 때면 이틀에 한 번씩 친구 집으로 갔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집주인은 비교적 젊은 남성이었는데, A가 짐을 정리하러 갈 때마다 집 안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느껴졌다고 했다. A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집주인이면 당연히 들어갈 수 있다"는 큰소리뿐이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았던 A는 결국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필자가 대신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강하게 말했지만, A는 "그냥 계약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 없이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닌 자신을 탓했다.

계약 만료 후 다시 집을 알아봐야 했지만, LH임대주택으로 구할 수 있는 집들은 대부분 비슷한 조건이었다. 그러다 필자가 직접 A와 함께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 그제야 햇빛이 잘 드는 쓰리룸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청년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 혼자 집을 보러 다닐 때,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어떤 청년들은 집을 보러 갈 때 일부러 나이 있는 어른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한다.


가족이 없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들

가족이 없다는 사실은 보육원 안에서도 느끼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훨씬 더 선명해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적인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형제자매는 몇 명인지, 부모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가족과의 추억은 무엇인지. 가벼운 스몰토크 속에서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아침에 엄마가 안 깨워줘서 지각할 뻔했다는 이야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면 부모님 전화가 쏟아진다는 이야기, 동생과 싸웠다는 이야기.

이런 대화 속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은 끼어들 틈을 잃는다. 그렇다고 매번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보육원 출신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렇게 청년들은 일반 가정에서 자란 또래들과 자연스러운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괴리감이 깊어질수록, 외로움은 더욱 짙어진다.


외로움이 만드는 틈, 그 틈을 파고드는 범죄

주거 불안은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하게 머물 곳이 없는 청년은 관계마저 불안정해진다. 친구 집을 전전하고,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은 고립을 깊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고립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때로 충동적 소비로, 때로는 충동적인 인간관계로 이어진다. 바로 그 틈을 파고들며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범죄가 발생한다.

자립 초기의 청년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에 놓여 있고, 동시에 일정 수준의 금전이 손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이들을 노리는 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많고 집요하다.


충격적인 그루밍 범죄 사례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가운데, WAVVE 제작 범죄 다큐 〈악인취재기〉 시즌 1, 3화 '키다리 목사의 두 얼굴'에 소개된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2020년 공영방송에 소개되며 알려졌고, 유명인들의 후원을 발판 삼아 몸집을 키운 그 단체를 필자가 처음 접한 것은 2021년이었다.당시 갈 곳이 없던 청년 B가 머물 곳을 찾다가 그 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청년들은 멘토들과 한집에서 생활했고, 멘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멘토들은 필자에게도 과할 만큼 친절했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있었지만, B와 또래인 청년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B는 멘토들에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그 시스템 자체를 무척 좋아했다. 단체 대표의 그럴듯한 언변 또한 B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B는 그 단체에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 필자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 연락은 우리 단체에 금전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필자가 "기초수급비도 나오고 있고, 단체에서 운영하는 공장에서도 일하고 있는데 왜 돈이 필요하냐?"라고 묻자, B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B가 필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단체에서 지속해서 통제했고, B 앞으로 나오는 기초수급비는 모두 단체가 관리하고 있었으며, 단체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한 대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B를 비롯해 청년들을 앞세워 모금된 거액의 후원금 역시 청년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을뿐더러, 단체 운영비로도, 간·직접비로도 쓰이지 않고 대표의 개인 재산 늘리기와 소위 엄마&아빠라고 불리었던 멘토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B 외에도 다른 청년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 단체 대표가 한 청년에게 보낸 문자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너와 내가 한 것은 거룩한 타락이다." 종교적 권위를 빌려 폭력을 신성한 것으로 포장한 이 한 문장은, 그루밍이 어떻게 피해자의 판단력 자체를 무너뜨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그 대표는 특수폭행, 성폭력처벌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오랜 시간 그 대표의 그루밍 범죄에 휘말렸던 몇몇 청년들은 그의 이름과 얼굴을 자기 몸에 타투로 새겨 넣기까지 했다.거짓은 결국 진실과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구속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여전히 그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립 준비 청년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얼마나 깊고 절망적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질문

혼자라는 두려움은 단순히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두려움은 집을 구하는 순간에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그리고 누군가의 달콤한 말과 관심 앞에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지붕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함부로 이용하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켜 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다.

제도가 아무리 잘 설계되어도, 집 앞까지 함께 가 줄 한 사람이 없다면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 A 곁에 누군가가 함께 부동산에 갔을 때 비로소 괜찮은 집이 나왔듯이, 청년 B에게 통제가 아닌 진짜 관계가 있었다면 그 단체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자립은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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