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의 경제 칼럼] 유행이 휩쓸고 간 자리, 그곳엔 원본이 없다

김민규 칼럼니스트 기자 발행일 2026-07-16 07:26:40 댓글 0
트렌드 따라가기 바쁜 상권들… 대체 불가능한 지역 정체성 회복 시급
▲ 김민규 칼럼니스트 (도시공학 박사수료)

도시계획 관점에서 획일화된 상권 현상은 유행을 넘어서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도시공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장소성이다. 이는, 단순히 지도상의 물리적인 좌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와 지형, 거주민들의 삶의 궤적이 쌓여 만들어내는 고유한 정체성을 뜻한다.

과거 상권은 이러한 장소성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바다와 인접한 도시는 항구 특유의 이미지를 품었고 구도심의 경우 그 지역만의 따뜻한 서사가 담긴 간판과 쇼윈도에 그대로 담아냈다.

하지만 현재의 상권 형성 방식은 철저히 트렌드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정 상권에서 시각적으로 소비하기 좋은 성공 공식이 발견되면 지역이 가진 본래의 맥락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 공식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복제된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상권의 정체성을 잃은 과정 속에서 인공적인 풍경 아래로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만다.

지금 우리의 상권은 자본과 소셜 미디어의 트렌드가 결합하여 당장 수익성이 높은 획일화된 업종과 디자인만이 골목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획일화가 도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이다.험이 크다.

이러한 획일화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는 도시공간에도 유효하다.

해당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과 사람들의 아카이브, 지역의 특색 있는 자원 등 그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미시적 지역성을 공간의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자발적인 철학이 필요하다.

인위적으로 단기간에 기획된 핫플레이스가 아닌 상인과 지역 사회가 천천히 관계를 맺으며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골목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소비자들 역시 SNS 속의 화려하지만 뻔한 이미지보다는 그 공간만이 가진 고유한 서사와 분위기에 비용과 시간을 소비할 만큼 성숙해졌다.

위대한 도시들은 결코 하나의 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다. 골목을 돌 때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지고 지역마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이 묻어나는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우리가 사랑했던 낡고 좁은 골목들은 저마다의 뚜렷한 목소리와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복제된 상권 대신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원본들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상권의 진정한 경쟁력은 유행을 얼마나 발 빠르게 따라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지역만의 다름을 얼마나 깊이 있게 가꾸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획일화된 상권의 틀에서 벗어나 잊혀진 도시의 고유한 모습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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