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인 구(球)의 겉넓이를 구하기 전 ... 소수점 절삭(버림)에 관해
다윗이 두 번 서 있는 계보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마태복음 1:17)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위 계보는 단순 산술로는 14대+14대+14대=42대이다. 그런데 실제 계보를 세어 보면 '다윗'의 이름이 두 번에 걸쳐 있어, 실제로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은 41명이 된다. -즉 '겹침' 속에 '-1'이 숨어 있다.
이 성경적 실마리를 따라 앞으로 게재되는 칼럼 속 입체인 구(球)의 겉넓이 산술식에서 '기간'과 '수(數)'가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기간'을 제외한 '수'를 나타내는 곳에서는 소수점 이하는 절사(버림)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아래 추가 설명이 나온다.
다니엘서의 70이레(49년)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다니엘 9:25~27)
다니엘 9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중건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하나님은 "칠십 이레(49년)"를 정했다. 7이라는 완전수가 일곱 번 겹쳐 만들어지는 이 49라는 숫자는, 창조된 7일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에게 허락된 시간이다.
49년 다음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절기 50년째에 맞는 '희년'이 시작되기 때문에, 기존 세상을 70이레로 제한한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전체 기간을 7일로 보고, 그 절반인 3.5일을 구(球)의 반지름으로 놓고 겉넓이를 구하면, 반지름이 3.5인 입체 구(球)의 겉넓이는 49π이다,
입체인 구(球)의 겉넓이에서 등장할 '기간'과 '수(數)' 중에 '기간'인 70이레(49년)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파이(π)는 칼럼 후속편에서 따로 설명할 예정이다. 왜 항상 '기간'에 파이가 그 중심에 서는지를.
물에서 건져 올린 그물에 가득찬 물고기 수 '153'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한복음 21:10~11)
앞에서 49π가 '기간'을 나타내는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세상에게 정해진 기간 70이레이면, 153은 '수(數)'를 나타낸다. 정해진 70이레 기간동안 물에서 끌어 올려지는 그물에 가득찬 물고기 수다.
'기간' 49에 파이 π(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를 곱하면 '수(數)' 153.93804...이 등장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간'을 제외한 '수'를 나타내는 곳에서는 소수점 이하를 절삭(버림)하기로 한다. 그 이유는 필자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42대가 다윗이 두 번에 걸쳐 겹침으로 실제는 41대로 -1인 것처럼, 소수점 이하를 필자 개인의 편의에 의해 절삭(버림)하기로 한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마태복음 1:17)
절삭(버림)의 또다른 이유는 산술적으로도 파이(π)는 62조 8000억 번째 자리까지 계산한 기록이 있는 소수점 이하가 무한하게 펼쳐진 무리수이자 비순환 무한소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값을 숫자로 완전히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간' 49에 파이 π(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를 곱하면 '수(數)' 153이 등장한다.
요한복음 21장에 부활하신 예수가 지시하신 곳에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자 잡힌 물고기가 153마리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153'은 몇 가지 독특한 성질을 가진 숫자이다. 아래는 필자가 아닌 일부 창조과학자나 성경학자들의 논리다.
- 삼각수: 1부터 17까지 모든 정수를 더하면 153이 된다(1+2+3+…+17=153).
- 암스트롱 수: 1³+5³+3³ = 1+125+27 = 153, 즉 각 자릿수의 세제곱의 합이 자기 자신과 같다.
신학적으로도 이 '153'이라는 숫자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다. 어떤 이들은 성막의 지성소가 정육면체 구조였다는 점과 연결해 '거룩함'의 상징으로, 어떤 이들은 시편에서 다윗이 "많은 물"에서 건짐받았다는 이미지, 엘리야가 다스렸던 물(바다) 이야기와 엮어 "세상의 바다에서 건져진 자들"이라는 선교적 상징으로 읽기도 한다.
물고기 그물이 온 세상 민족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초대교회 이래 꾸준히 있어 왔다. 성경의 숫자들은 정밀한 과학의 공식이 아니라 의미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다.
필자는 숫자의 정확한 일치를 찾아 헤매기보다, 그 숫자들이 가리키는 이야기, 즉 창조와 평행선을 그리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에 대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입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물에서 건짐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음 하는 바람이다.
* 본 칼럼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개역한글판을 따랐으며, 본문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성경 읽기에 근거한 하나의 묵상적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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