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욱의 종교와 기하학] 제3편, 성전 측량 ... 입체인 구(球)의 겉넓이

정진욱 칼럼니스트 기자 발행일 2026-07-15 07:31:00 댓글 0
▲ 종교와 기하학, 칼럼니스트 정진욱


성경에서 '측량'이 뜻하는 의미

성경에서 '측량'은 단순한 자로 재는 건축의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의 처소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지닌 계획과 질서 위에 세워졌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장치다.


"인자야 너는 이 족속에게 이 전을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에스겔 43:10)

여기서 핵심 단어는 '죄악', '부끄러움', 그리고 '형상'이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4)

'죄악'과 '부끄러움'은 하나님의 형상,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이다.


십자가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 그리고 열리는 성전의 문

지난 칼럼 1편에서 필자는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평행선'을 이야기했다. 죄악으로 인해 영원히 만날 수 없었던 신과 인간 사이의 평행선의 담장을 허무신 분이 곧,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실체를 드러낸 예수 그리스도이다.


▲ 십자가 창에 찔린 예수 옆구리를 통해 들어간 하나님의 거처, 성막 구조


십자가 위,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를 따라가면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이어진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4)

십자가에서 예수의 옆구리가 찔렸을 때 흘러나온 물과 피는 일반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가 그 안에 담겼다.

예수는 단순히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데려가기 위해 이 땅에 왔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베드로전서 3:18)

물은 육신의 더러움을 씻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19~22)

물과 피가 나오는 그 통로, 곧 군병의 창에 찔린 그 옆구리에 난 동쪽 문을 따라 성막 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피(번제단)과 물(물두멍, 곧 '바다')이다.


하나님은 지으신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7~9)

에덴은 하나님의 성소, 광야, 빈들, 성산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두로'와 '아담' 처음 사람들의 불의가 드러난 이 곳에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는 이유는, 이곳을 다시 회복하기로 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그리고 부른 이유도 처음과 똑같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래서 그 시험을 통해 '복'을 주기 위함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명기 8:2)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명기 8:1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막 뜰에서 마주하는 번제단과 물두멍('바다')의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이어가도록 하겠다.


그러면 앞으로 칼럼에서 사용될 산술식은 왜 하필 입체인 '구(球)'인가

열왕기상 7장은 성막 기물 중 '바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 원, '바다'의 둘레와 지름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가 오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왕상 7:23)

2. 사방, 안정성을 상징하는 입체

"또 놋으로 받침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의 장이 네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요 고가 세 규빗이라" (왕상 7:27)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이 오백 척이며 광이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에스겔 42:20)

사방을 나타내는 사각형은 네 변과 네 꼭짓점이 만들어내는 안정성과 견고함을 상징한다. 흔들리지 않는 기초, 반석 위에 세운 집의 형상이다. 그리고 원의 넓이(πr²)가 네 개 모이면, 4πr², 곧 원의 입체인 구(球)의 겉넓이가 된다.

3. 구, 기둥머리와 그물 장식

"이 두 기둥머리에도 그물 곁 곧 배 같이 부른 곳으로 말미암아 각기 머리 위에 석류 이백이 줄을 지었더라" (왕상 7:20)

여기서 "배 같이 부른 곳"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기둥머리가 단순한 원기둥의 상단이 아니라,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구형(球形)'이었다는 뜻이다.

"두 기둥과 두 기둥 위에 있는 두 그릇 같은 머리와 ... 그 머리 위의 석류 사백 개" (왕상 7:41~42)

'그릇 같은 머리', 즉 사발이나 공 모양의 머리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둥머리가 '평면적 원'이 아니라 '입체적 구'임을 거듭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평면에서 입체로

왕상의 저자는 이 '바다'를 평평한 원반이 아니라, 처음부터 '둥근(round)' 입체, 곧 대야와 같은 곡면의 그릇으로 묘사하고 있다.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바퀴와 네 형상도 마찬가지다.

원의 둘레 공식(2πr)에 담긴 원주율은, 곧바로 이어지는 구형 기둥머리의 곡면 묘사와 맞물리며 평면의 논리를 입체로 확장시킨다. 

"셋은 북을 향하였고 셋은 서를 향하였고 셋은 남을 향하였고 셋은 동을 향하였으며" (왕상 7:25)

동서남북, 즉 3차원 공간의 전 방위를 향해 배치된 열두 마리의 소는 '바다'가 단지 평면의 원이 아니라,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곡률을 지니는 입체 구(球)로서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 구(球)의 겉넓이는 평면 원이 사방인 입체를 가진 4πr²이다


평면 기하학의 원이 공간 속에서 회전할 때 만들어지는 도형이 바로 입체인 구(球)이며, 그 겉넓이는 원의 넓이(πr²)의 정확히 네 배(4πr²)가 된다. 

'바다'의 수치는 단순한 둘레 계산을 넘어, 입체적 완전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다'는 제사장이 씻기 위한 용도이다.

"또 물두멍 열을 만들어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역대하 4:6)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도착한 성막 안 뜰, 번제단과 물두멍(바다)은 바로 생명나무로 나아가기 전 '죄악(번제단)'과 '부끄러움[물두멍)'을 씻기 위한 신학적 장치다.

다음 칼럼부터는 실제 입체인 구(球)의 겉넓이를 구하는 기하학 산술식을 통해, 이 수치들이 어떻게 하나의 통일된 질서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지를 본격적으로 측량해 볼 예정이다.


* 본 칼럼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개역한글판을 따랐으며, 본문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성경 읽기에 근거한 하나의 묵상적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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