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세대 이하 정비사업’ 자치구 이양 논란…“속도보다 도시계획 일관성 따져야”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26-08-29 00:36:18 댓글 0
최종부 서울시의원 “권한 나누기가 주택공급 해법 될 수 없어”

정부와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500세대 이하 정비사업 구역 지정 권한의 자치구 이양’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지방분권이라는 취지와 달리, 서울의 도시계획을 소규모 단위로 쪼개 난개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서울시의회 최종부 의원(국민의힘·비례)은 27일 열린 제339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했다.

최 의원은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며 “서울시 때문에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500세대라는 기준이 도시계획적으로 타당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비사업 과정에서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착공·준공·입주 등 상당수 실질적인 인허가 업무를 이미 자치구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 시장은 신속통합기획 도입 이후 과거 6개월에서 1년가량 걸리던 일부 심의 기간도 1~3개월 수준으로 단축됐다며, 정비사업 지연의 원인을 단순히 서울시의 권한 집중에서 찾는 것은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쟁점은 ‘500세대’라는 기준이다.

정비사업 권한을 세대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나눌 경우 개별 사업의 처리 속도는 빨라질 가능성이 있지만, 서울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보는 도시계획의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 의원은 이날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마강래 교수의 SNS 글을 소개하며 500세대 이하 권한 이양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를 제시했다. 전현희 국회의원이 과거 ‘쪼개기 개발’과 난개발 가능성을 지적한 발언도 함께 거론했다.

오 시장 역시 소규모 단위로 정비계획이 분절될 경우 학교와 도로, 공원, 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종합적으로 배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축전문가 “정비사업은 아파트만 짓는 사업 아니다”

건축·도시계획 분야에서는 이번 논란을 단순한 서울시와 자치구의 ‘권한 다툼’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건축·도시계획 전문가는 “정비사업은 노후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개별 건축사업이 아니라 도로와 학교, 공원, 상하수도, 교통량, 일조권, 스카이라인 등 주변 도시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계획 사업”이라며 “사업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광역적 검토 기능까지 약화시키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500세대 이하 사업이 인접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될 경우 각각의 사업만 놓고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교통량 증가와 학교 과밀, 기반시설 부족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자치구 권한 확대의 장점도 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자치구가 소규모 정비사업을 직접 판단하면 행정 절차를 줄이고 사업 기간을 단축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핵심은 권한을 서울시가 갖느냐 자치구가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업까지 자치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어떤 사업부터 광역 차원의 검토를 거치게 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며 “단순히 ‘500세대’라는 숫자 하나보다는 사업 면적과 용적률 증가 규모, 교통·교육시설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허가하느냐’보다 ‘왜 늦어지는가’부터 따져야

이번 논쟁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정비사업이 실제 어느 단계에서 지연되고 있는지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이 서울시 심의에 있다면 심의 권한과 절차를 손질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조합 내부 갈등이나 공사비 상승, 사업성 악화, 금융 규제, 이주비 조달, 각종 인허가 협의 등이 주된 원인이라면 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는 것만으로 사업기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 시장이 이날 ▲조합원 지위양도 한시적 허용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완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서울시 역시 ‘난개발 우려’만 강조해서는 부족하다. 자치구 권한 확대가 실제 어느 정도의 기간 단축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서울시가 계속 담당해야 하는 도시계획 기능은 무엇인지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서울시 모두 필요한 것은 권한의 크기를 둘러싼 공방보다 사업 지연 원인을 단계별로 분석하는 일이다.

500세대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권한을 일괄적으로 나누기보다 사업 면적과 밀도, 주변 교통·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자치구 단독 결정 대상과 서울시 협의 대상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주택공급의 속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비사업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수십 년간 유지된다. 몇 달의 행정기간을 줄이기 위해 도시계획의 일관성을 훼손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난개발 우려를 이유로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그대로 유지해서도 안 된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서울시냐 자치구냐’가 아니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면서도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의 계획성과 기반시설을 어떻게 함께 지켜낼 것인가가 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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