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에 23억7천만원 투입한 화물열차, 실제 납품은 중국산 부품…코레일 전관 개입 의혹까지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26-10-14 08:05:56 댓글 0
특허 기술 미적용·부품 규격 변경에 시운전 차질…코레일 퇴직자 잇단 제조사 이직 논란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  정부가 23억7천만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해 국산화한 화물열차 핵심 기술이 실제 차량 제작 과정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중소기업이 제작했던 주요 부품 상당수가 중국산으로 변경된 데다 연구개발 당시 확보한 특허 기술마저 적용되지 않아 국가 R&D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해당 화물열차 제작업체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퇴직자들이 계약 체결 이후 잇따라 재취업한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부품 변경과 설계승인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연구개발 계획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경기 성남시 분당구을)이 국토교통부와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산화를 목표로 개발된 '화물열차용 스윙모션 대차 시스템'의 주요 부품이 실제 납품 과정에서 연구개발 당시와 다른 제품으로 변경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 철도기술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화물열차용 스윙모션 대차 시스템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당시 국내 철도차량 제조사가 연구개발을 주도했으며, 코레일은 시제품 시운전과 성능 검증을 담당하는 위탁연구기관으로 참여했다.

이 사업에는 정부 예산 23억7천만원이 투입됐다. 최종보고서에는 연구개발품 제작비의 75%를 국내 중소기업이 담당했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자체 특허 기술인 '탈부착식 웻지 마모판'은 기존 수입 제품보다 성능과 유지보수성이 개선된 기술로 평가됐으며, 국내 철도 부품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수입 대체 효과도 주요 성과로 제시됐다.
▲부품 제작사 비교
▲입찰 당시 제출한 퇴직자 고용확인서

그러나 연구개발이 종료되고 실제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당초 국산화 목표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2024년 코레일은 서해선에서 운행할 컨테이너 화물열차 49량을 발주했다. 입찰 조건에는 미국철도협회(AAR) 규격 승인 제품이거나 국가 R&D를 통해 개발돼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해당 사업은 국가 R&D에 참여했던 철도차량 제조사가 수주했다.

문제는 실제 납품 예정인 대차 부품의 상당수가 연구개발 당시 국내 기업이 제작한 제품이 아닌 중국산으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김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부품은 생산국뿐 아니라 형상과 치수까지 변경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과 실제 제작 차량에 적용된 기술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국산화 성과로 제시됐던 탈부착식 웻지 마모판도 실제 차량에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대차와 차체를 연결하는 부품 사이에 단차가 발생해 정상적인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고, 차량 시운전에도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철도차량은 대차와 차체의 결합 상태가 주행 안정성과 직결되는 만큼 부품의 형상이나 치수가 변경됐다면 기존 시험 결과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지 기술적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 R&D로 안전성을 검증받은 제품을 전제로 계약이 이뤄졌다면, 실제 납품 제품이 당시 검증된 설계와 동일한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철도차량 관계자 시각…“부품 원산지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 변경과 안전성 검증”

철도차량 기술 분야에서는 부품의 생산국 변경 자체가 곧바로 안전성 문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상과 치수 등 설계 사양까지 변경됐다면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차는 열차의 하중을 지지하고 주행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로, 차체와 연결되는 부품의 치수와 조립 상태가 설계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례에서는 부품 변경에 대한 승인 절차와 변경된 제품의 성능시험 여부, 국가 R&D 당시 확보한 안전성 검증 결과를 실제 납품 차량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중국산 부품이 계약상 허용되는 대체품인지, 발주처가 변경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승인했는지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단순한 원산지 변경 문제를 넘어 국가 연구개발 성과의 활용 여부와 철도차량 제작·검수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코레일 계약 이후 퇴직자 5명 추가 이직…설계승인 담당 출신 사장까지

국산화 기술의 실용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와 함께 코레일 퇴직자들의 제조사 재취업도 논란이 되고 있다.

코레일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제조사에 근무하는 코레일 출신 직원은 계약 당시 1명이었으나 계약 이후 6명으로 증가했다. 계약 체결 이후 코레일 퇴직자 5명이 추가로 이직한 것이다.

여기에 코레일 제출 명단과 회사 조직도에 나타나지 않은 제조사 사장 역시 코레일에서 열차 설계승인 업무를 담당했던 엔지니어링센터장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차량 발주와 설계승인 업무를 경험한 퇴직자들이 계약업체에 다수 근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가능성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퇴직자의 민간기업 취업 자체가 위법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부당한 영향력이 행사됐는지는 이직 시점과 담당 업무, 설계 변경 및 승인 과정에 관여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판단할 수 있다.

김은혜 의원은 이번 사안에 대해 “코레일과 전관의 개입과 합작 없이는 벌어질 수 없는 비리”라고 주장하며 감사원 감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국가 R&D 성과는 어디로…국산화 실적과 실제 납품 제품 간 괴리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부 예산을 투입해 확보한 국산화 기술이 실제 공공 철도차량 구매 과정에서 얼마나 활용됐느냐는 점이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은 기술 확보 자체뿐 아니라 상용화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까지 고려해 추진된다. 연구개발 당시 국산화율과 기술적 성과를 강조했더라도 실제 제품 생산 과정에서 주요 부품이 수입품으로 대체됐다면 당초 정책 목표가 충분히 달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자체 개발한 특허 기술이 실제 납품 차량에서 제외됐다면 해당 기술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와 대체 기술의 성능, 경제성, 안전성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국산화 성과를 인정한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서 배제된 배경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관리 체계에도 허점이 남을 수밖에 없다.

기자의 시각…국민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 납품 단계에서 사라져도 책임 없나

이번 사안은 단순히 중국산 부품을 사용했다는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국산화 기술 확보를 위해 예산을 투입했고, 해당 기술의 안전성이 입찰 조건에도 반영됐지만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부품과 설계가 달라졌다는 점이 본질적인 문제다.

국산화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정작 상용화 단계에서 다른 국가의 부품을 사용했다면 그 이유와 결정 과정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제작비 절감이나 부품 조달의 어려움 등 합리적인 사유가 있었는지, 변경된 부품이 당초 연구개발 제품과 동등한 성능을 갖췄는지, 발주처의 정식 승인을 받았는지에 따라 사안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부품 단차로 시운전까지 차질을 빚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실제 운행에 투입되기 전 제작과 검증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정확한 원인 분석과 개선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코레일 퇴직자들의 잇단 재취업 역시 의혹만으로 비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설계승인 업무를 담당했던 인사가 제조사 경영진으로 이동한 사실은 계약과 승인 과정의 독립성을 점검해야 할 이유가 된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해당 차량의 부품 변경 내역, 설계승인 과정, 안전성 검증 자료, 계약업체와 퇴직자 사이의 업무 관련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개발 당시의 국산화 실적과 실제 납품 제품의 국산 부품 사용 비율을 비교해 국민 세금으로 확보한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됐는지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산화 사업의 성패는 연구개발 최종보고서에 기록된 성과가 아니라 실제 철도 현장에서 해당 기술이 얼마나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이번 사안에 대한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의 책임 있는 설명, 부품 변경 및 설계승인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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