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낭을 가로지르는 쏭한 건너로 하이반 고갯길이 구름에 가려 보인다.다낭을 여행하다 보면 집들이 대동소이한 모습들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 광광지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집들을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가로 4~6m, 세로 16~18m의 규격으로 지어야하며, 집을 옆집과 벽을 붙여 지어야한다. 이때 앞면은 페인트를 칠하고, 옆면이 시멘트 담이라면 붙여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페인트가 칠해 있으면 단독으로 사용한다는 표시다.다낭의 여행은 아쉽지만 마무리를 하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있던 후에로 떠나야 한다. 후에로 가려면 하이반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아쉬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해 언제든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하이반 고갯길 정상에서 바라본 후에 가는 길잠시 쉬는 동안 휴게소 건너편 언덕에 전망대를 올라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준다. 가까워서 보이지 않지만 구름이 나를 부르는 것이리라. 조금의 수행으로도 근두운을 탈 듯 해진다.고갯길에서 2시간 남짓 달려 옛 수도인 후에(Huế)에 도착하면, 다낭과 다른 도시를 만나게 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본산 자동차가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다낭보다 좀 더 탁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후에는 1945년까지는 베트남의 수도였다. 다낭보다 작은 도시지만 도로망은 더 좋다. 후에의 시민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마지막 왕조의 왕궁이 있는 도시고, 대학교가 5곳이 있는 교육도시다. 그리고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티엔무 사원의 7층 불탑 모습월남전 당시 미군이 불교 탄압을 많이 했다. 그 당시 주지스님인 틱꽝득(Thich Quang Duc) 스님은 미군의 탄압에 맞서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 앞에서 소신공양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때 불에 탄 자신이 앞으로 쓰러지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고, 뒤로 스러지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국 불에 탄 시체는 뒤로 넘어졌다. 놀라운 일은 그의 심장이 불에 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어느 나라든 처음 여행을 가면 그 곳의 역사적 유적지를 살피는 것은 여행에 조미료를 더하는 것과 같다. 현지인들의 애환을 가슴에 담고 마주보면 지혜가 추가됨을 체험하게 된다.▲ 후에 왕궁의 태화전에서 바라본 오문모습후에 왕궁은 경성 안에 황성이 있고, 황성 안에 자금성이 위치해 있는 구조다. 경성에는 10개의 문이 있는데 아직도 복원 중이다. 그리고 왕궁의 정문격인 오문도 방문당일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황제가 업무를 보던 태화전과 후원에 위치한 문관과 무관이 머물던 건물이 좌우에 있고, 중앙에는 전쟁당시 사라진 건물터만 남아 있다. 그 외에 왕실 사당과 문묘 등을 둘러보고 왕궁주변의 해자를 따라 탐방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