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뿌리 깊은 2·3세 ‘세습백태’

최성애 기자 발행일 2015-09-25 10:02:32 댓글 0

신귀족주의 시대를 맞아 정·재계 2·3세는 각자의 꼬리표를 떼고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2세 재벌 중 일부는 ‘후광’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권력남용을 일삼고 있어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해 말 ‘조현아 땅콩 리턴 사건’은 온 국민을 공분에 빠뜨린 사건으로 회자된다.


공교롭게도 당시 뉴욕발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장본인은 일등석에 탑승해 있던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였다.


조씨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딸로, 재벌 3세다. 재벌 3세쯤 되면 세상물정 알 리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 재벌가의 현실이다.


재벌 1세가 갖은 불법, 탈법, 위법행위를 일삼으면서 기업을 일으켰고, 적당히 권력과 유착하면서 구치소도 몇 번은 가본 소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라면, 재벌 2세는 그러한 현실을 보고 자라 나름대로 고생이 뭔지를 알고 있는 세대다.


그러나 재벌 3세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식적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재력이 넘쳐나는 집안에서 고생 한 번 안 하고 귀족학교에 다니며, 귀족처럼 살아왔을 게 볼 보듯 뻔하다.


이러한 2세, 3세의 문제는 경제계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도 같은 선거제도하에서 3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더군다나 지역주의라는 보호막이 기득권 정치인들을 지켜주다 보니 정치인 2세, 3세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 2세고, 새누리당의 ‘투톱’이었던 김무성 당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지냈다.


실제 김 대표의 선친은 전남방직(현 전방)을 설립해 기업인의 색채가 강하지만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김용주 전 의원. 유 전 원내대표는 대구에서 13대(민정당), 14대(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이처럼 정치세습은 국내에서 확산되는 있는 추세다. 현재 19대 국회의원 중 부모의 뒤를 이어 ‘금배지’를 단 의원은 여야 통틀어 14명. 새누리당이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 외에 김세연·김을동·김태환·유일호·이상일·이재영·정문헌·정우택·홍문종 의원까지 11명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3명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김세연 의원은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낸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이고 김을동 최고위원은 영화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 전 의원을 이어 18대 총선에서 국내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됐다. 김태환 의원은 오상교육재단 설립자인 매암 김동석 전 의원의 아들이고 이상일 의원은 선친이 신한민주당 및 통일민주당에서 3선 의원을 지낸 이진연 전 의원이다.


새누리당의 ‘젊은 피’ 이재영 의원은 어머니가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도영심 유엔세계관광기구 스텝재단 이사장이다. 정문헌 의원은 정재철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아들이고 정우택 의원의 선친은 5선 의원을 지낸 정운갑 전 농림부 장관이다. 홍문종 의원의 부친인 홍우준 경민대학 이사장은 11~12대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새정치연합의 노웅래 의원은 마포구에서 5선 국회의원과 구청장을 두 번 지낸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이 선친이다. 전남 여수를 지역구로 둔 김성곤 의원은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영 전 의원의 아들이다.


이외에도 현 상임고문인 정대철 전 의원은 정호준 의원의 아버지이며, 그의 아버지는 장면내각에서 외무부장관을 지낸 정일형 전 의원이다. 어머니 이태영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하는 정치인 가계라고 할 수 있다. 정일형 전 의원은 서울 중구를 중심으로 한 선거구에서 2대부터 9대까지 무려 8선을 기록했다.


그의 아들인 정대철은 아버지가 ‘3·1 명동사건’에 연루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1977년 종로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된 이래 5선을 지낸 야당의 원로가 되었다.


정대철 전 의원은 야당의 당 대표 선거에 단골로 나서는 선수였으나 한 번도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다. 그를 당대표 선거에서 이겼던 사람들은 1993년 이기택, 2002년 한화갑, 2008년 정세균이다. 이렇게 정대철 전의원은 당대표 선거에서의 잔혹사가 있다.


전직 의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정몽준 전 의원은 아버지(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보다 먼저 정계에 입문했고 경기도지사로 재직 중인 남경필 전 의원은 남평우 전 의원의 아들이다.


조순형 전 의원의 부친은 재선 의원이자 지난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유석 조병옥 박사다.


이처럼 대를 이은 정치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정치활동을 지켜보며 일찌감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가 많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1996년 만 31세의 이른 나이로 정계에 입문해 벌써 5선(15~19대) 의원을 했다.


김세연 의원도 18대 때 당내 최연소(36)로 금배지를 달았다. 정치인 2세는 부는 물론 권력까지 세습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만 41세의 나이로 부친의 지역구인 의정부에서 당선돼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남경필 지사는 부친이 재임 기간 중 사망하자 그해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이어받았고 노웅래 의원이나 정호준 의원도 부친의 지역구인 마포구와 중구에서 각각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역색이 강한 영호남의 정치인 중에는 지역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 김세연 의원은 부친의 부산 금정 지역구를 이어받았고 김성곤 의원은 여수에서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빠르게 발전한 이유는 ‘우리가 열심히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정치인이 이렇다고 하면 한국사회가 훨씬 정체될 수밖에 없다”며 “일본 같은 경우 세습 정치인이 많고 이것이 경제에 비해 정치가 낙후된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고 말했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나 홍일·홍업씨가 각종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것도 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세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도 대를 이은 정치가문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의 케네디가(家)·부시가를 비롯해 일본의 아베 총리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정치인 후손들이다. 특히 진정한 ‘정치 왕조’를 이룬 케네디 가문은 막대한 부를 활용해 정치를 ‘가업’으로 만든 최초의 집안이라 할 수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초대 위원장과 영국 대사를 지낸 조지프 케네디 아래 4대를 거치며 정치판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조지프는 네 명의 아들 가운데 장남을 대통령으로 키우려고 했으나 그가 29살에 2차대전에 나가 전사하는 바람에 계획을 바꿨다. 그는 차남인 존 F.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셋째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막내 에드워드를 상원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2009년 에드워드가 세상을 뜨면서 케네디 가문 1세대의 정치 활동은 종말을 고했지만, 후손들의 활약은 여전하다. 에드워드의 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는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 둘째 아들 패트릭 케네디 2세는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는 현재 일본 주재 미국대사로 활동 중이다.


아들인 존이 1999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못다 한 꿈을 이뤘을 것이란 게 대체적 시각이다.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큰딸인 캐슬린은 1995~2003년까지 메릴랜드 주 부주지사를, 아들 조지프는 6선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손자인 조지프 케네디 3세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4대가 공직을 맡았다. 평론가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기점으로 후보자뿐 아니라 그의 배우자, 형제·자매까지도 관심을 두는 경향이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케네디가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명문가는 부시 집안이다. 1988년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H W. 부시는 코네티컷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아버지 프레스콧 부시의 영향력을 물려받았다.


1992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에게 패하면서 단임에 그쳤던 한은 2000~2008년 아들 조지 W 부시가 연이어 백악관을 차지하면서 풀렸다. 이제 차남 젭 부시가 세 번째 대통령 도전자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손자 조지도 벌써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등 부시가는 3대에 걸쳐 워싱턴 정가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 1월 타계한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도 ‘부자 지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탈리아 출신 식료품 가게 아들인 그는 주지사에 연거푸 세 번 선출됐다.


장남인 앤드루 쿠오모도 2010년 뉴욕 주지사에 처음 당선된 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해 아버지의 연임 전통을 이었다. 그는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누가 됐든지 결국은 해당 인물의 정치적 역량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치평론가 김선씨는 “후광을 입고 쉬운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된다면 사회가 후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2·3세 정치인이 역량이나 어젠다로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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