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부터 3년간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자들이 800만 명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한 언론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0%가 은퇴 후 전원생활을 하길 원한다고 한다. 덕분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연일 땅, 주택 건축, 편의시설 관리에 따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일, 어느덧 자연스러운 은퇴 후 모습이자 우리 모두의 로망이 되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건축가로 일한 뒤 대학교수까지 역임했던 츠바타 슈이치(88)와 그의 아내 히데코(85)가 작은 통나무집을 지어 그 옆에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5년 간의 준비 끝에 명예퇴직 후 경기도 가평 시골 동네로 이사를 간 54세 A씨. 그동안 틈틈이 준비를 했기에 땅을 사고 주택을 짓는 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살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들 하는 것처럼 텃밭도 만들고 정원도 가꾸고는 있지만, 도저히 흥이 나지 않았다. 즐겨 찾던 지인들의 발길도 뜸해지자 아내는 종종 외로움을 토로했고, 외부 편의시설과의 거리도 멀다 보니 A씨 역시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다. 조용한 집에서 아내와 둘만 있다 보니 다투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꿈이었던 전원생활 자체가 악몽이 되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싱싱한 유기농 텃밭,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가든파티 등 전원생활을 떠올리면 덩달아 연상되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된 최근에는 땅 고르는 법, 집 짓는 법, 텃밭 가꾸는 법을 알려주는 정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요즘 시골 고즈넉한 마을에는 땅을 사거나 집을 짓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어떤 집을 짓고 살지 그 고민 때문에 수많은 주택 건축 관련 책들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지에 대한 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가정을 찾기도 어렵다. 이제는 ‘뭘 먹고 살지’보다 ‘어떤 모습으로 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은퇴 쇼크를 겪었던 일본의 경우, 이미 전원생활을 통해 안정권에 든 가정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아가는 88·85세 일본의 노부부 이야기을 담은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청림라이프) 속 주인공인 츠바타 부부 역시 은퇴 후 행복하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대표적인 사례다.
직접 설계한 작은 통나무집 옆에 텃밭을 가꾸며 사는 88·85세 츠바타 부부, 36년 전 은퇴 후 이곳에 정착한 두 사람은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구획별로 농작물을 나눠 텃밭을 가꾸면서 그곳에서 키운 채소 70종, 과일 50종으로 요리를 하고, 도시에 살고 있는 자녀들을 챙기며, 이웃과도 나눈다. 소박하지만 즐거운 노후생활, 츠바타 부부를 만나보자.
나고야 시 근교의 통나무 단층집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200여 평의 텃밭과 30여 평의 잡목 숲을 가꾸며 36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1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와 과일이 자라고 있는데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킨 비료를 사용해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고.
노부부는 지금도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비결의 하나는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히데코씨가 25년째 만들고 있는 아침주스라고 믿는다. 재료는 텃밭에 있는 제철 채소와 과일들이다.
슈이치씨는 은퇴하기 전까지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은퇴한 후부터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꼼꼼한 성격으로 메모와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츠바타하우스’가 지금처럼 보기 좋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고 한다.
아내 히데코씨가 좋아하는 일은 요리란다. 텃밭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계절에 맞게 밥상을 차려내고 또 남은 작물을 지인들에게 알맞게 보내주는 것이 하루의 일과라고 할 수 있다. 츠바타하우스의 생활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히데코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준비를 한다고.
슈이치씨가 존경하는 건축가 안토닌 레이먼드의 집을 본떠 만든 통나무집 옆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들 부부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은 텃밭이 있다. 그리고 봄에는 신록이 가득하고, 가을엔 단풍이 물들고, 여름엔 강한 햇살을 가려주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으며, 겨울에는 낙엽과 따뜻한 석양을 선물해주는 잡목림도 있다.
“츠바타 부부 사이에는 ‘서로 간에 무슨 일이든 강요하지 않기’라고 하는 암묵의 약속이 있다. 예를 들어 히데코씨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슈이치씨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기는 사람 기분도 좋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슈우탕에게 좋아하는 것을 드시라 하고 있어요.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매번 슈이치씨가 좋아하는 것으로 상을 차리고, 모자란 영양소는 매일 아침 마시는 과일채소 주스로 보충시켜준다.”
남편 슈이치씨는 일상의 소소한 모습까지도 기록하고 정리해두며 아내를 위해 ‘잊지 마세요’라는 메모판도 만들어 달아놓는다. 아내인 히데코씨는 그런 남편을 위해 밭에서 나는 체리, 매실, 유자 등으로 반찬을 만들고, 70여 종의 채소로 요리를 한다. 서로에게 무리한 일을 요구하지 않고,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하는 이들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바쁘지 않은가? 그래서 60살을 넘기고 은퇴한 사람들이 이것저것 해주면 되는 거다. 놀면서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다음 세대가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전해주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직업적인 농부가 아니지만 평범한 노인들이 텃밭을 일구며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 부부처럼 소박하고 착하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슈이치씨는 자료 정리법, 맛있는 베이컨을 만드는 방법, 구획을 나눠 텃밭을 관리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고 아내 히데코씨는 과일주스, 매실장아찌, 딸기잼 만드는 레시피, 길쌈 자수 이야기까지 공개한다. 이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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