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아내’ SK 창업 이끈 노순애 여사 ‘생애’ 조명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16-01-30 00:32:38 댓글 0
故 최종건 창업주 부인 노순애 여사 별세, 향년 89세...조용한 내조, 대주주 일가친척 화목 일궈낸 큰 어른
▲ 사진(SK창업 이끈 노순애 여사) :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의 부인 노순애 여사가 28일 8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부인 노순애 여사가 지난 28일 오후 9시 39분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고 최종건 창업회장이 1953년 폐허가 된 공장을 인수해 선경직물을 창립하고, ‘섬유에서 석유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오늘날 SK그룹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내조와 함께 맏며느리 역할을 다해 왔다. 그리고 1973년 최회장을 떠나 보낸 지 43년 만에 그의 곁에 영원히 잠들게 됐다.


노순애 여사는 1928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교하 노씨 규수로 1949년 4월 22세에 수성 최씨 장손이었던 두 살 연상의 최종건 창업회장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최종건 회장의 큰누이 고 최양분 여사가 노순애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아버지 최학배 공에게 적극 추천했던 것이다.


결혼한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한강 방어선이 무너진 지 채 24시간도 못돼서 전화(戰禍)가 수원까지 닥치자 최종건 회장은 아버지, 동생 최종현 회장과 함께 잠시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노순애 여사는 맏며느리로서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다.


그 해 9월 서울이 수복된 후 집으로 돌아온 최종건 회장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향했다. 추수기라 일손이 바쁜 때였으므로 친정에 가 있으라는 시어머니의 배려였다. 어렵기만 하던 부모 곁을 모처럼 멀리 떠나온 그들이 대화를 나두던 중 자연스럽게 공장얘기와 서울 창고에 사두었던 인견사 얘기가 나왔다. 아내와의 대화를 나누던 최종건 회장은 곧바로 서울 창신동에 있는 창고를 들렀다. 천만다행으로 폐허 속에서도 인견사 열 한 고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노순애 여사의 한 마디로 되찾은 이 열 한 고리의 인견사가 바로 오늘날 SK그룹을 있게 한 종잣돈이 된 것이다.


노순애 여사는 평소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고 알려진다. 특히 가정 일에는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으며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최종건 회장이 창업 초기시절 한 달 동안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재건에 힘쓸 때에도 노순애 여사는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지켰다.


뿐만 아니라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안살림 외에도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손수 식사를 챙기기도 하는 등 자신의 고달픔보다는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시동생, 시누이까지도 챙기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다.


효심 깊은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 공양에 지극했고, 최 회장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종가집 집안 살림과 자식 교육에 전담하는 등 내조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고 최종현 회장을 비롯해 최종관·최종욱 고문 등 시동생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며 보살피고, 결혼 등도 손수 챙기는 등 장손의 아내와 며느리로서 본분을 다했다.


최종건 회장이 기분 좋게 술이 취해 집에 돌아오면 아내 노순애 여사의 손을 잡고 거실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다. 춤을 추다가 더욱 기분이 좋아지면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 내 큰딸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고 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이러한 단란하고도 행복한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던 바탕에는 노순애 여사의 헌신적인 가족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인의 내조가 있었기에 최종건 창업 회장이 기업 활동에 전념하며 선경직물 공장을 성장 발전시켰고, 석유화학과 호텔 사업 등으로 다변화해 외형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또한 고인은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항상 형제간 우애와 집안의 화목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11월 미수연에서도 “아들 딸들아 회목하게 잘 살거라”라고 당부했다고.


당시 큰 아들 최신원 회장은 “어머님께서 늘 말씀하신 ‘장하다 우리 아들’ 그 한마디에 뭉클하고 설레였다”며 “더 장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해왔다”고 회고했다. 최태원 회장도 젊은 시절 수 년간 고인의 집에서 생활하며 큰어머님의 사랑과 지원을 받았다고 회고하며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런 탓에 SK그룹의 형제경영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다른 재벌가와 달리 SK그룹에서는 형제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재계의 전언이다.


그러나 조용한 내조와 자식 교육에 열중하던 고인은 여자로서와 어머니로서 수차례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73년에는 결혼 24년 만에 최 회장이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돼 기나긴 미망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또 지난 2000년에는 큰 아들이었던 윤원이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고인은 2002년 둘째 아들 신원과 함께 사재를 출연해 ‘선경 최종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한 뒤 지역 발전을 위한 후학 양성과 사회 봉사활동 등을 펼쳤다.


결국 노순애 여사는 지난 28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했으며, 고인의 유족으로는 최신원 SKC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그리고 딸 최정원, 최혜원, 최지원, 최예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이며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이 진행될 날짜는 미정이며 장지는 서울 서대문구 광림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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