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이자 롯데그룹 2인자로 통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검찰 소환을 앞둔 8월26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오전 7시10분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목을 맨 넥타이 등이 끊어져 바닥으로 추락한 이 부회장을 마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남긴 유서 내용은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결백이 주를 이뤘다. 그는A4용지 4매 분량의 자필 유서에서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며 신 회장을 마지막까지 옹호했다.
국내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 내 2인자 자살소식에 여론의 관심은 이인원 부회장 개인에 대해 집중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에서 ‘비(非) 오너 일가’ 중 처음으로 부회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올해 69세가 되는 이 부회장은 43년 간 롯데에 몸담은 국내 최장수 CEO다.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이후 1987년까지 호텔롯데에서 근무했다. 이어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관리와 상품구매, 영업 등의 핵심 업무를 두루 거쳤다. 1997년 50세에 롯데쇼핑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후 10년 동안 롯데쇼핑을 유통 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2롯데월드의 안전 관리를 총괄해왔고, 9월부터는 롯데그룹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끊이지 않는 피의자 자살
이 부회장과 같이 검찰 조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업인 중에는 지난해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포함된다. 지난해 4월 자원개발비리 혐의로 기소된 성 전 회장은 검찰 조사 도중 자살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남긴 메모에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불법 자금을 줬다고 폭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성완종 리스트’논란을 낳기도 했다.
성 전 회장도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하루 전날 유서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가 북한산 인근에서 목 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유서에는 ‘억울하다’는 내용과 ‘가족에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성 전회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 전 비서실장을 포함한 8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는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며 세간의 관심은 받았다.
A4용지 3분의2 크기의 메모지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2006년 9월26일 독일· 벨기에), 이병기, 이완구’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검찰은 대선자금 등 정치권 금품 의혹 특별수사팀을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으로 꾸려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재계 잔혹사
기업 총수가 검찰 조사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역대 정권마다 발생했다.
김대중 정부 초창기인 1998년 10월에는 박경홍 39쇼핑 사장의 투신 사건이 발생했다. 가짜보석 판매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박 사장은 이와 관련된 방송청문회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유력 재계 인사 두 명이 목숨을 끊었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대북 송금 및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뛰어 내렸다. 정 전 회장의 자살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됐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04년 3월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전국에 생중계되던 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자택에서 해당 방송을 본 남 전 사장은 곧바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 차는 한강 남단에서 찾아가라”고 말한 뒤 한남대교에서 투신자살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학헌 에이스저축은행 회장이 저축은행 비리 의혹과 관련해 자살한 경제인이다. 김 회장은 검찰 소환이 예정된 2012년 1월 12일 당일 서울 서초동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4월 하이마트가 그룹차원 비리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를 받을 당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하이마트 납품업체 사장 박모씨도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2010년 6월에는 방위산업체 협력업체들과 짜고 부품단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수차례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 LIG넥스원 전 대표 A씨가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현 정권에서도 검찰 수사 중 자살한 기업인은 존재했다.
2014년 7월 철도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김광재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한강에 투신했고 2시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 전 이사장은 철도시설공단 전·현직 간부들이 납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상태였다.
같은 해 5월엔 성호정 전 송학식품 회장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했다.
심리적 압박 커

이처럼 검찰로부터 대대적인 수사를 받던 유명인사, 특히 경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검찰 조사 중 자살한 기업인과 공직자는 약 90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부담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게 기업인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 일에 정치적 사안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경우가 다수다. 그렇다보니 보통의 기업 비리 사건에 비해 검찰의 수사 강도는 물론 세간의 관심도 더 높다. 수사진행 상황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고 실제 혐의가 확인되기도 전에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심리학 전문가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자존감이 훨씬 강하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쌓아온 것들이 어떤 거대한 벽에 부딪혀 순식간에 무너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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