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강한 사람끼리 싸우는 통에 약한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는 우리 속담이다.
우리 나라 5위의 완성차 업체 르노삼성이 현재 처한 모습을 이보다 잘 표현한 말이 어디 있을까. 뭔가 궁금해지지 않은가. 좀 더 지켜 들어가 보자.
지난 20년 가까이 르노닛산그룹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지난 19일 하네다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되면서부터다.
체포 당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곤 회장의 입장을 옹호하는 대신 해임 절차를 밟기 위한 이사회를 즉각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르몽드 등 주요 외신은 일본인 경영진의 쿠데타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렇다. 하지만, 사건은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르노와 닛산의 결별을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이 솔솔 흘러나온다.
닛산은 1990년대에 잇딴 경영 실패로 1999년 1조4000억엔의 부채를 안고 파산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분을 르노에 넘기고 당시 르노 부사장이던 곤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일본에 부임한 곤은 5개 공장의 문을 닫고 전체 직원의 15%(2만2500명)를 감원하는 등의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이듬해 3310억엔 흑자로 돌려놓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닛산 실적이 르노를 추월하면서 불거졌다. 지난해 닛산은 매출 120조원, 순이익 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르노의 지난해 순이익 6조8500억원 중 54%인 3조6700억원이 닛산에서 넘어온 것이다. 판매량도 닛산이 580만대로 르노(370만대)보다 많다.
복잡한 지분 구조가 걸림돌이지만 닛산의 르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그 여파를 르노삼성이 고스란히 떠 안을 셈이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는 닛산의 북미 수출용 중형 SUV인 '로그'를 생산한다. 이 공장의 생
산 능력이 연 27만대인데, 이중 절반이 로그 생산에 투입된다. 르노와 닛산의 긴밀한 협력 관계로 인한 것인데, 특히 카를로스 곤 회장이 2013년 위탁 생산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르노와 닛산이 결별의 수순을 밟게 되면, 르노삼성의 공장 가동률이 50%로 뚝 떨어지게 돤다. 그렇다고 남은 생산능력을 내수용 완성차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구조는 더욱 아니다. 르노삼성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어서다.
그야말로 ‘껍데기 뿐인 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르노삼성 측은 “곤 회장의 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을 의미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르노삼성이 현재 처한 위기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한 자동차산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국가간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르노·닛산 동맹 분열 위기도 이 같은 구조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르노와 닛산이 지분 구조로 얽혀 있지만 국가간 이익이 충돌할 경우 언제든 그 관계가 쉽게 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르노삼성은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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