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 경제 칼럼] 경상수지는 역대급인데, 환율은 왜 거꾸로 가는가

전연우 칼럼니스트 기자 발행일 2026-07-11 07:45:22 댓글 0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전연우, 칼럼니스트


수출은 사상 최대인데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지금 한국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출이 늘어나면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고, 달러 공급이 많아지면 원화 가치는 올라가며 환율은 내려가는 것이 경제의 기본 공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은 더 이상 그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올해 1~5월 누적 경상수지는 1,412억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최대 기록인 1,230억5,000만 달러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넘어섰다. 6월 수출도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상반기 수출 역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7월 초까지 환율은 36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했고, 상반기 평균 환율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수출은 역대 최고인데 원화는 약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제 환율은 무역보다 자본이 움직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 외환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과거 환율은 수출과 수입 같은 상품거래가 좌우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투자와 외국인 자금 이동 같은 금융자본의 흐름이 환율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2000년 이후 환율 변동 원인을 분석한 결과 금융충격이 상품충격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특히 2015년 이후에는 자본유출에 따른 원화 약세 현상이 더욱 빈번해졌다.

결국 한국은 무역으로 달러를 벌고 있지만, 금융시장을 통해 그 달러가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인데 시장에는 달러가 남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나타난 자금 흐름을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최근 4개 분기 동안 한국은 약 1,779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만 1,121억 달러에 달했고,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약 448억 달러를 회수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 상당 부분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실제 국내 외환시장에 남는 달러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달러를 벌어도 시장에는 남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서학개미와 연기금이 바꾼 달러의 길

이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해외투자의 급격한 확대다. 예전에는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가 상당 부분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으로 쌓였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우리나라 대외자산에서 외환보유액 비중은 14.9%까지 낮아진 반면, 해외 증권투자는 44%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해외 주식의 3분의 2 이상이 미국 시장에 집중되면서 국내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곧바로 미국 금융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로 저축이 늘어나면서 소비 대신 해외 금융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외환시장은 얕고 충격에는 더 민감하다

한국 외환시장의 구조도 문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동일한 규모의 자본유출이 발생했을 때 원화 환율의 반응은 일본이나 호주보다 훨씬 크다.

외환시장의 깊이가 충분하지 않아 조금만 자금이 빠져도 환율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다.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래되는 달러가 부족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출기업도 달러를 쉽게 팔지 않는다

최근에는 수출기업들의 행동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달러를 벌자마자 원화로 환전하기보다,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을 고려해 달러를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에는 달러가 존재하지만 실제 현물환 시장에서는 거래되지 않는다.

달러가 없어서 환율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시장에 풀리지 않아 환율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 구조다.

삼성전자가 보여준 또 하나의 신호

이 같은 변화는 최근 국내 증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했고, 외국인은 하루 동안 수조 원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기업 실적은 좋아졌지만 외국인 자금은 한국 시장을 떠났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하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로 가져간다.

주식시장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나타나고, 외환시장에서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현상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금 이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과거에는 기업 실적이 시장을 움직였다면, 지금은 자본이 어느 나라를 선택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수출이 좋아도 환율은 오를 수 있다

지금의 고환율은 수출 부진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수출과 경상수지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보다 더 많은 달러가 해외투자와 외국인 자금 이탈, 그리고 기업들의 달러 보유를 통해 시장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묶여 있다는 점이다.

'수출이 잘되면 원화는 강세가 된다'는 공식은 더 이상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앞으로 환율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무역 규모보다 자본이 어디로 이동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 시장은 단순히 얼마를 버느냐보다 그 달러가 어디에 머무느냐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달러를 버는 경제와 달러가 남는 시장은 더 이상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외환시장이 보여주는 가장 큰 구조적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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