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방치된 주유소는 도시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관리되지 않을 경우 지역의 유휴공간으로 남게 된다. 특히 과거 석유제품을 취급했던 시설이라는 점에서 부지를 새로운 용도로 활용할 경우 안전과 환경 관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폐업한 주유소를 철거하는 대신 편의점과 차량 이용시설이 결합된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시도가 등장했다.
KCC는 BGF리테일이 추진하는 폐주유소 업사이클링 모델 ‘CU Re(씨유 리퓨얼)’ 프로젝트에 참여해 안전환경 색채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1호점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호국로에 있던 폐업 셀프주유소를 리모델링한 ‘CU 소흘IC점’이다. 약 130평 부지에 38평 규모의 편의점과 차량 이용시설 등을 결합한 복합 생활공간으로 조성됐다.
줄어드는 주유소… 폐업 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전국 영업 주유소는 2010년 1만2,691곳에서 2026년 6월 1만296곳으로 약 1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유소 감소가 이어지면서 폐업 이후 남겨진 부지의 활용 문제도 커지고 있다.
주유소는 도로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고 차량 진·출입을 위한 비교적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철거 후 방치하기보다 새로운 상업·생활시설로 전환할 경우 기존 공간을 다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련 업계에서도 폐주유소를 편의점과 세차장, 물류 거점 등 새로운 시설로 전환해 활용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CU Re’ 역시 기존 주유소의 공간적 특징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생활시설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차량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공간… ‘색깔’도 안전시설 된다
폐주유소를 편의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는 기존 상업시설과 다른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기존 주유소 구조에 보행자와 편의점 이용객까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KCC는 이를 고려해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olor Universal Design·CUD)을 적용했다.
CUD는 색각 특성이나 낮은 시력 등 이용자의 다양한 시각적 조건을 고려해 색상과 명도, 채도, 패턴 등을 설계함으로써 공간과 시설 정보를 보다 쉽게 인식하도록 하는 디자인 방식이다.
이번 매장에서는 자동차 진·출입 구역과 보행자 출입구, 횡단 구간, 상품 픽업존, 휴게공간 등을 색채로 구분해 차량 운전자와 보행자가 공간의 기능과 이동 방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차량 이동구간과 보행구간에는 서로 구별되는 색상과 명도·채도 대비를 적용해 동선이 교차하는 지점의 혼선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편의점 출입구와 픽업존, 휴게공간에도 기능에 따라 색채를 달리 적용했다.
KCC는 여기에 고내후성 우레탄 도료와 축광 도료, 동절기 결빙으로 인한 미끄럼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능성 도료 등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환경전문가 관점 “철거 대신 재사용 긍정적… 환경 안전성 확인은 별개 문제”
환경적 관점에서 폐주유소를 기존 구조물까지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자원순환 측면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
건축물을 전면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과 달리 기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면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과 신규 자재 사용을 줄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주유소를 재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친환경 사업이라고 단정하기에는 확인해야 할 부분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유류를 취급했던 부지의 환경 안전성이다.
주유소는 장기간 휘발유와 경유 등을 저장·취급하는 시설인 만큼 폐업 후 다른 용도로 전환할 경우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토양오염 여부 등 부지의 환경 상태를 적절하게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편의점처럼 일반 시민이 장시간 이용할 수 있는 생활시설로 전환한다면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토양과 시설의 안전성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
환경적 효과 역시 구체적인 수치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기존 건축물 재사용으로 어느 정도의 건설폐기물을 줄였는지, 신규 건축과 비교해 자재와 에너지 사용을 얼마나 절감했는지 등이 확인된다면 ‘업사이클링 매장’이라는 명칭에 보다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폐주유소의 변신… 도시재생 모델로 확대될까
KCC는 향후 ‘CU Re’ 매장 확대에 맞춰 신규 매장의 입지와 구조, 이용 환경을 고려한 외관 색채 계획과 CUD 설계를 지원할 계획이다.
KCC 컬러디자인센터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운영이 중단된 주유소를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생활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KCC의 색채 설계 역량을 활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차량과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일수록 이동 동선과 시설의 기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색채 설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공간의 용도와 이용자 특성에 맞는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과 기능성 도료를 결합해 산업 현장은 물론 상업·생활시설에서도 안전성과 편의성, 디자인 품질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맞춤형 안전환경 솔루션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폐주유소 업사이클링, ‘간판만 바꾸는 재활용’ 넘어야
폐주유소를 편의점으로 바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단순히 새로운 매장이 하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주유소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미 개발된 부지를 어떻게 다시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폐업한 주유소를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간의 특성을 살려 다시 사용한다면 도시의 유휴공간을 줄이고 기존 자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자동차 중심이었던 주유소 공간에 보행자와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편의·휴게 기능을 결합하는 것은 변화하는 교통·생활환경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친환경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주유소 부지의 토양오염 여부가 적절히 관리됐는지, 기존 시설을 얼마나 재사용했는지, 철거와 신축을 선택했을 경우와 비교해 실제 환경부담을 얼마나 줄였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차량과 보행자 동선을 색깔로 구분한 것이 실제 사고 위험을 얼마나 낮추는지는 향후 운영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용자의 인지성과 접근성이 실제로 개선됐는지에 대한 평가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이유는 폐주유소라는 쇠퇴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재생 모델로 평가받으려면 매장 수를 늘리는 것보다 환경과 안전 측면에서 어떤 효과를 만들어 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문 닫은 주유소의 간판을 편의점 간판으로 바꾸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버려질 뻔한 공간을 얼마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공간으로 되돌렸는가가 폐주유소 업사이클링의 진짜 성적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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