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5000평, 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묘소는 왜 ‘성역’인가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26-09-01 15:16:56 댓글 0

건국대 서울캠퍼스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설립자 상허 유석창 박사의 묘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 도심 대학들이 설립자 묘소를 잇따라 캠퍼스 밖으로 옮긴 것과 달리 건국대는 1972년 조성된 묘역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어서다.

묘소와 주변 공간을 합치면 약 5000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도심 대학 캠퍼스에서 5000평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학생을 위한 교육·연구시설이나 기숙사, 복지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특정 설립자를 기리는 묘역으로 계속 유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묘소의 위치다. 

건국대의 상징과도 같은 일감호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캠퍼스 중심부의 공간이다.

과거에는 설립자 묘소가 사립대학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대학을 세운 인물을 가까이에서 기리고 건학정신을 되새기는 상징 공간이었다. 그러나 대학의 규모가 커지고 캠퍼스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고려대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고려대를 다닌 졸업생들에게 본관 뒤편 인촌 김성수 선생 묘소는 익숙한 장소였다. 1955년 조성돼 30여 년간 캠퍼스의 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1987년 경기도 남양주 유택으로 이장됐다. 그 자리에는 인촌기념관이 들어섰다.

중앙대도 설립자 승당 임영신 박사의 묘소를 캠퍼스에서 없앴다. 흑석캠퍼스 뒷동산에 있던 묘소는 2009년 파묘됐고 유골은 화장해 영신관 앞 동상 아래에 안치됐다. 묘소가 있던 자리에는 기숙사가 들어섰다.

국민대 역시 설립자 김성곤 전 쌍용그룹 회장의 묘소를 캠퍼스 밖으로 옮겼다. 1975년 별세한 김 전 회장은 학교 뒷산에 묻혔지만 이후 1984년 강원도 평창으로 이장됐고, 2014년에는 고향인 대구 달성군으로 다시 옮겨졌다.이들 대학이 설립자를 잊은 것은 아니다. 묘소 대신 기념관과 동상, 각종 기념사업 등을 통해 설립자의 업적과 건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국대는 왜 다른 길을 택했을까.

건국대 측은 유석창 박사의 묘소 유지와 관련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묘소가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설립자의 상징적 권위를 유지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한 대학가 관계자는 31일 “과거 사립대에서 설립자 묘소는 건학정신을 구성원들에게 주입하고 대학의 일체감을 높이는 상징물 역할을 했다”며 “특히 설립자가 독립운동이나 사회운동 등과 연결된 경우 묘소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일종의 성역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학은 설립자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라기보다 수많은 학생과 교수, 연구자들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대규모 묘역을 수십 년째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 공간을 둘러싼 비용과 기회비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건국대 묘소를 둘러싸고는 실제 유택과 별개로 캠퍼스 내 묘소가 조성된 것 아니냐는 이른바 ‘가묘 의혹’까지 제기돼 왔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안인 만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실제 유골이 없는 상징적 묘역이라면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유석창 박사를 기릴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당연히 대학의 역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얼마만큼의 캠퍼스 공간을 특정 설립자를 위해 영구적으로 할애할 것인가다.5000평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 도심에서 대학의 공간 하나하나는 학생들의 교육권과 직결된다. 강의실 하나, 연구실 하나, 기숙사 한 동을 추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대학에서 대규모 묘역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정말 불가피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학 구성원 모두가 설립자에 대해 동일한 역사적 평가를 공유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설립자의 공적을 기리는 것과 설립자를 사실상 ‘성역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에는 설립자의 묘소를 가까이 두는 것이 대학의 자랑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대학은 설립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학생과 교수, 교직원, 동문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적 공간이다.그렇다면 건국대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유석창 박사의 묘소는 반드시 캠퍼스 안에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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