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자 글로벌 환경 이슈] 중남미, ‘이동경로 자연채권’ 기준 마련 ... 철새가 금융의 길잡이로

유승철 기자 발행일 2026-09-13 08:34:20 댓글 0
- 철새 서식지 보호 효과 따져 자연기반해법·친환경 기반시설 금융 지원
- 습지·산림·초원·연안 보전 통해 탄소저장과 기후재난 대응까지 모색
- 생물다양성 금융의 진전…‘그린워싱 방지’ 위한 투명한 성과 검증 필요
▲ 글로벌 플라이웨이 정상회의 현장사진(출처=중남미개발은행 CAF 공식 웹)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의 이동경로가 앞으로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의 환경사업과 기반시설 투자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활용된다.

중남미개발은행(CAF)은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 미국 국립오듀본협회와 함께 철새와 서식지 보전 효과를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철새 이동경로 자연채권 프레임워크(Flyways Nature Bond Framework)’를 완성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기준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글로벌 플라이웨이 정상회의(Global Flyways Summit)’를 계기로 공개됐다. 개발사업에 필요한 금융을 공급할 때 경제성뿐만 아니라 철새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심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철새 보호 효과를 금융 심사에 반영

프레임워크는 특정 사업이 철새와 서식지 보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과학·환경 기준을 제시한다.

평가 항목에는 철새에게 중요한 지역인지, 자연기반해법이 적용되는지, 시설물이 새에게 안전하게 설계됐는지, 환경·사회적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는지 등이 포함된다. 사업 시행 이후에는 철새 개체군과 서식지 변화를 지속해서 관찰하고 평가하도록 했다.

앞으로 CAF는 이 기준을 활용해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금융지원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선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2050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이동하는 대표 철새 개체군의 10%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다.

이 사업은 CAF와 버드라이프, 오듀본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아메리카 철새 이동경로 이니셔티브(Americas Flyways Initiative)’의 하나다. 이 계획은 북극권에서 남미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까지 이어지는 35개국의 주요 철새 이동경로를 대상으로 생태계 보전과 지역개발을 연결한다. 


아메리카 철새 289종 감소세

프레임워크가 마련된 배경에는 빠르게 진행되는 철새 개체군 감소가 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의 철새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89종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번식하는 철새 개체군은 1970년 이후 약 25억 마리 감소했으며,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별도로 460종이 위협받고 있다.

철새는 여러 국가의 습지와 숲, 초원, 해안지역을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한 국가가 서식지를 잘 보호하더라도 이동 중간에 머무는 다른 지역이 파괴되면 개체군 전체가 감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철새 보전은 개별 보호구역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이동경로 전체를 하나의 연결된 생태계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 주요 발표 내용(출처=시민 이해를 위해 AI제작)


습지와 숲을 ‘경제적 기반시설’로

철새 이동경로를 따라 보전되는 습지와 산림, 초원, 연안 생태계는 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습지는 홍수 때 물을 저장하고, 산림과 초원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한다. 해안습지와 맹그로브는 폭풍과 해일의 충격을 줄이고 어업과 지역주민의 생계를 지탱한다.

따라서 철새 서식지를 보호하는 사업에 자연채권을 활용하면 생물다양성 보전과 탄소저장, 수자원 보호, 기후재난 대응이라는 여러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기존의 녹색채권이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교통,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등에 집중했다면 이번 프레임워크는 ‘철새 개체군과 생태계가 실제로 회복되는가’를 금융 심사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소식은 환경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선언이나 캠페인에 머물게 하지 않고, 대규모 개발금융의 사업 선정 기준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채권이라는 이름만으로 환경적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철새 개체수 증가와 서식지 회복 효과를 장기간 측정하지 않으면 환경보호를 내세운 새로운 금융상품에 그칠 수 있다.

특히 도로·항만·공항·송전선·풍력발전시설처럼 철새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반시설이 ‘조류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충돌·서식지 단절·빛공해·소음 등 구체적인 위험을 공개해야 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과 투자자가 자체적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 전문가와 지역사회가 검증에 참여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국내에 주는 교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의 중심에 놓여 있다. 서천 유부도, 순천만, 낙동강 하구, 천수만, 철원평야 등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철새 서식지이지만 개발과 관광, 에너지시설 확대에 따른 압력을 받고 있다.

이번 발표가 주는 교훈은 자연을 보호하려면 예산을 투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금융과 개발사업의 의사결정 단계부터 생태계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지방채나 녹색채권을 발행할 때 ‘습지 몇 곳을 정비했는가’와 같은 사업량뿐 아니라 철새 개체군이 실제로 회복됐는지, 이동경로가 연결됐는지, 지역주민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갔는지를 측정할 필요가 있다.

철새는 국경을 모르지만 인간의 개발사업과 금융은 행정구역과 수익성의 경계 안에서 움직인다. 생태계 보전의 성패는 결국 금융의 흐름을 자연의 흐름과 얼마나 조화롭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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