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종이컵의 배신 … 뜨거운 물에 PLA 컵에서 1미리리터당 약 430만 개 미세 플라스틱 입자 방출

정이든 청년기자 기자 발행일 2026-09-07 07:11:33 댓글 0
- 미국화학회 학술지에 중국·호주 공동연구진 연구 결과 공개
- 생분해성 PLA 코팅컵, PE 코팅컵보다 플라스틱 입자 질량 약 12배 많아
- 한국도 ‘친환경’ 표시보다 코팅재 공개·고온 용출 시험 기준 마련해야
‘친환경’ 또는 ‘생분해성’이라는 이름을 단 종이컵도 뜨거운 음료를 담는 순간 미세·나노플라스틱 노출원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6일 미국화학회(ACS)의 국제학술지 ‘ACS Food Science & Technology’에 공개된 연구 내용에 따르면 중국 둥베이농업대학교와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공동연구진은 폴리에틸렌(PE)과 폴리락트산(PLA)으로 각각 내부를 코팅한 일회용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넣고 플라스틱 입자 방출량을 분석했다.

해당 논문은 지난 8월 25일 온라인에 게재됐으며, 연구를 수행한 기관은 중국과 호주다. 



▲ 시민 이해를 위해 AI ChatGPT 생성


종이컵 속 플라스틱…PLA 컵서 1mL당 약 430만 개


종이컵은 겉면 대부분이 종이로 만들어지지만 물이 스며들거나 컵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쪽에 얇은 방수 코팅을 입힌다. 일반 제품에는 석유계 플라스틱인 PE가 주로 사용되며, 친환경·생분해성 제품에는 옥수수 전분 등 식물 유래 원료로 제조할 수 있는 PLA가 활용된다.

연구진이 뜨거운 물을 넣은 뒤 방출된 입자를 측정한 결과, PLA 코팅 종이컵에서는 물 1mL당 약 430만 개, PE 코팅 종이컵에서는 약 270만 개의 나노 크기 플라스틱 입자가 검출됐다.

300mL 음료 한 잔으로 단순 환산하면 실험 조건상 PLA 코팅컵에서 약 12억9천만 개, PE 코팅컵에서 약 8억1천만 개의 입자가 나올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컵의 제조 방식과 코팅 두께, 물의 온도, 접촉 시간에 따라 방출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를 모든 제품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입자의 ‘개수’와 ‘질량’이다. PLA 코팅컵의 입자 수는 PE 코팅컵보다 약 1.6배 많았지만, 방출된 플라스틱 입자의 전체 질량은 약 12배 많았다. ‘PLA 컵에서 입자가 12배 더 검출됐다’고 표현하면 수치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퀸즐랜드대 연구진은 “종이로 만들어진 컵이라고 해서 플라스틱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컵이 뜨거운 물과 접촉하면 상당한 양의 미세·나노 크기 물질을 방출한다”고 밝혔다. 


생분해성’은 환경 조건에 관한 말 … 인체 노출 안전성과 달라

이번 결과는 ‘생분해성’이라는 표시가 뜨거운 음료를 담았을 때의 안전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생분해성은 특정 온도와 습도, 미생물, 산업용 퇴비화 시설 등의 조건에서 물질이 분해될 수 있다는 의미다. 뜨거운 물과 접촉했을 때 입자를 적게 방출한다거나 인체에 더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PLA 제품 가운데 상당수는 자연환경이나 가정용 퇴비통에서 곧바로 분해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산업용 퇴비화 조건을 필요로 한다. 국내에 해당 수거·처리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면 일반 폐기물과 함께 소각되거나 매립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컵의 갈색 외관이나 ‘에코’, ‘그린’, ‘자연 유래’ 등의 문구만으로 재질과 안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재생종이처럼 보이는 갈색 컵도 단순히 표백하지 않은 종이를 사용했거나 색을 입힌 제품일 수 있으며, 내부에는 별도의 플라스틱 코팅층이 존재할 수 있다.


위해성은 아직 불확실 … 연구 결과를 ‘독성 확정’으로 해석해선 안 돼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PLA 자체의 독성이나 종이컵 사용에 따른 질병 발생을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세·나노플라스틱의 인체 유입 가능성에 관한 연구는 늘고 있지만, 섭취량과 체내 잔류, 장기적인 건강 영향 사이의 관계를 평가할 통일된 기준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입자의 크기와 형태, 첨가제, 농도에 따라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종이컵 한 잔이 곧바로 질병을 일으킨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제품에서 의도하지 않은 플라스틱 입자가 반복적으로 방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연구진도 종이컵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면서도, 뜨거운 음료용 식품 접촉재의 안전성 평가에 미세·나노플라스틱 방출 시험을 포함하고 소비자가 코팅 재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기준에 맞으면 안전”에서 고온 입자 방출 관리로

국내에서는 종이컵을 식품용 기구·용기·포장으로 관리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종이컵에 일반적으로 PE 코팅이 사용되며, 관련 기준과 규격에 적합한 제품은 뜨거운 물이나 커피에 사용하는 것이 대체로 안전하다고 안내해 왔다. 다만 전자레인지용이 아닌 종이컵을 가열하면 코팅이 손상될 수 있어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문제는 기존 안전관리 체계가 주로 특정 화학물질의 용출량과 재질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처럼 고온에서 떨어져 나오는 미세·나노 크기의 물리적 입자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국내 정책도 엇갈려 있다.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3년 11월 소상공인의 세척 인력과 시설 부담 등을 이유로 종이컵을 일회용품 사용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강제 금지 대신 자발적인 감량과 다회용컵 지원 방식으로 전환했다. 당시 환경부도 종이컵이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매우 낮다고 인정했다. 

종이와 코팅재가 붙어 있는 복합재질은 일반 폐지보다 분리와 재활용이 까다롭다. 내용물이 남아 있거나 다른 쓰레기와 섞이면 재활용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결국 종이컵은 건강 노출 가능성과 자원순환 문제를 동시에 가진 제품인 셈이다.


국내에 필요한 세 가지 … 코팅재 표시·고온 시험·다회용 전환

정부와 업계는 우선 종이컵 겉면에 PE·PLA 등 내부 코팅재를 소비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 같은 포괄적인 표현만 강조하고 실제 식품과 접촉하는 재질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둘째, 실제 사용 환경을 반영한 고온 시험 기준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의 온도와 접촉 시간, 컵의 마찰·변형 여부에 따른 미세·나노플라스틱 방출량을 제품별로 평가하고, 시험·분석 방법을 표준화해야 한다.

셋째, 종이컵의 재질만 교체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사용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PLA로 코팅한 일회용 컵을 PE 코팅컵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폐기물과 반복 노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 공공기관과 사무실, 카페에 세척 가능한 다회용컵과 회수 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다.

소비자는 뜨거운 물이나 커피를 장시간 종이컵에 보관하지 말고, 가능하면 유리·도자기·스테인리스 등 반복 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예방책이다. 종이컵을 전자레인지에 넣거나 여러 차례 재사용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기자의 시선

이번 연구가 던지는 핵심은 “PLA가 PE보다 더 위험하다”는 단순한 재질 경쟁이 아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며 색을 갈색으로 바꾸고 ‘생분해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제품이 친환경적이거나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이컵의 진짜 얼굴은 겉면의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음료와 직접 맞닿는 안쪽 코팅층에 있다. 소비자에게는 그 재질을 알 권리가 있고, 정부에는 일상적인 사용 조건에서 얼마나 많은 입자가 방출되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친환경 컵’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컵을 덜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다. 친환경은 컵의 색깔이나 광고 문구가 아니라, 원료에서 사용과 회수·재활용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으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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