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보내온 지구촌 인류에 대한 경고 ... 기후위기의 얼굴, '북극곰'

안영준 기자 발행일 2026-09-07 07:12:06 댓글 0
- 얼음이 사라지자 육지로 내려온 북극곰 … 기후위기가 바꾼 북극의 생존지도
- 2025년 북극 해빙 최대 면적, 47년 위성관측 사상 최저, 2026년에도 기록적 저수준
- 사냥터 잃은 북극곰, 긴 단식과 번식 저하 직면, 마을 접근 늘며 주민 안전도 위협
북극곰에게 바다의 얼음은 단순히 쉬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먹이를 구하는 사냥터이자 이동로이며, 짝을 만나고 새끼를 기르는 생존 기반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일찍 녹고 늦게 얼면서 북극곰의 삶을 지탱하던 ‘얼음 위 생태계’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 부서진 해빙 위의 북극곰(이미지출처=독자 이해를 위해 ChatGPT 생성)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2025년 북극 해빙은 3월 22일 약 1,433만㎢까지 확장한 뒤 연간 최대 면적에 도달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이는 47년간 이어진 위성관측 기록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였다. 1981∼2010년 평균보다 약 131만㎢ 부족했다.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약 13배에 해당하는 얼음이 평균치보다 사라진 셈이다. 

상황은 이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6년 북극 해빙 최대 면적도 2025년과 통계적으로 사실상 같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NSIDC 2026년 분석은 특정한 한 해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북극의 겨울철 얼음마저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얼음이 사라지면 사냥할 시간도 줄어든다

북극곰의 주된 먹이는 지방이 풍부한 고리무늬물범과 턱수염물범이다. 북극곰은 물속에서 물범을 추격하기보다 해빙 위에서 숨구멍이나 얼음 가장자리를 지키며 사냥한다. 얼음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먹이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봄철은 북극곰이 여름철 단식에 대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봄에 얼음이 일찍 무너지면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육지에 올라와야 한다. 가을 결빙까지 늦어지면 먹지 못하고 버텨야 하는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캐나다 허드슨만에서는 최근 30년 동안 수온 상승과 함께 봄철 해빙이 빨라지고 가을철 결빙은 늦어지면서 얼음이 없는 기간이 약 한 달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북극곰의 물범 사냥과 체중 축적, 번식 성공 가능성을 동시에 떨어뜨린다. 


육지의 먹이로는 물범을 대신하기 어렵다

얼음에서 밀려난 북극곰은 육지에서 새알과 풀, 열매, 순록 사체 등을 먹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북극곰이 육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는 기대도 제기한다. 

하지만 육상 먹이만으로는 물범의 지방이 제공하는 고열량을 대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2024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캐나다 매니토바주 서부 허드슨만의 북극곰 20마리에 카메라와 추적장치를 달아 육지 생활을 관찰했다. 

일부는 활동량을 줄였고 일부는 먹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체중이 감소했다. 육지에서 더 많이 움직이고 다양한 먹이를 먹더라도 소비한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하지 못한 것이다. 

긴 단식은 새끼와 임신한 암컷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어미가 충분한 지방을 축적하지 못하면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해빙 감소와 함께 일부 북극곰 집단에서 체중 저하와 생존율·번식률 감소가 관찰되는 이유다.

다만 모든 지역의 북극곰이 같은 속도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스발바르와 바렌츠해 일부 개체군처럼 먹이를 바꾸거나 새로운 환경을 이용하며 당장은 양호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사례도 확인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지역별 적응이 해빙의 지속적인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한다. 북극곰의 위기는 한 장의 사진보다 복잡하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 해빙 상실이라는 과학계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굶주린 북극곰이 마을로 향한다

육지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북극곰과 사람의 생활공간도 가까워지고 있다. 먹이 냄새를 맡은 북극곰이 쓰레기장이나 식량 저장소, 주거지역 주변으로 접근하면 주민의 안전과 북극곰의 생존이 모두 위험해진다.

북극 원주민과 지역 주민에게 북극곰은 기후위기의 상징이기 전에 실제로 마주칠 수 있는 대형 포식자다.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곰을 쫓아내거나 사살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북극곰전문가그룹은 기후변화로 북극곰의 육지 체류가 길어지는 동시에 북극 지역의 산업·관광 활동까지 증가하면서 사람과 곰의 충돌을 줄이는 대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역사회에서는 음식물과 쓰레기를 곰이 열 수 없는 시설에 보관하고, 감시요원이 접근한 곰을 조기에 발견해 비살상 방식으로 쫓는 대응이 시행되고 있다. 

주민 교육과 경보체계, 주거지 주변 조명, 안전한 폐기물 관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충돌을 줄이는 대책일 뿐 북극곰의 사냥터가 사라지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북극곰 보호는 결국 온실가스 감축 문제

밀렵 방지와 서식지 보호, 해양오염 관리도 중요하지만 북극곰의 장기적인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은 지구의 온도다.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북극 해빙은 더욱 일찍 녹고 늦게 형성돼 북극곰이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계속 줄어든다.

북극곰이 육지로 내려오는 모습은 야생동물 한 종의 문제가 아니다. 얼음에 햇빛을 반사하던 북극해가 어두운 바다로 바뀌면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이는 다시 온난화와 해빙 감소를 촉진한다. 

북극에서 시작된 변화가 해수면과 해류, 기상 체계를 통해 세계 곳곳의 폭염과 집중호우, 한파 변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얼음 위에 홀로 선 북극곰은 도움을 기다리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인류를 향해 경고를 보내는 존재다. 

북극곰이 육지로 향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의 삶을 가능하게 했던 바다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의 생존지도를 바꾸고 있는 힘은 결국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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