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안의 기자] 열아훕 살에 펜을 놓은 ‘비운의 방랑 시인’ ... 세상에 너무 일찍 도착한 천재 시인 '랭보'를 만나다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09-04 07:41:13 댓글 0
▲ 신간 및 인문학 제보, 정진욱 기자 jnoog@naver.com


출퇴근 전철 안에서, 야외 카페나 집에서 만나는 짧은 여백. 기자가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인문학의 한 조각을 건넨다.

오늘 살롱에서 만나볼 인물은 프랑스 문단을 가로지른 찬란한 유성이자 현대시의 지형을 바꾼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다.



너무 일찍 세상에 등장한 어린 천재

1854년 10월 20일 프랑스 북동부 샤를빌에서 태어난 랭보는 일찍부터 비범한 언어 감각을 드러냈다. 열 살 무렵부터 라틴어로 글을 짓고, 십 대 중반에는 이미 완숙한 시를 써 교사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조숙한 재능의 이면에는 답답한 현실이 놓여 있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랭보는 독실하고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학교와 종교, 가정의 규율이 소년을 단단히 붙잡았지만, 그의 정신은 그 울타리를 견디지 못했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랭보는 여러 차례 집을 나섰다. 기차에 몸을 싣거나 때로는 걸어서 파리를 향했다. 그에게 가출은 철없는 일탈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세계로부터 언어와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열여섯 살 소년, 파리 문단을 흔들다

1871년, 열여섯 살의 랭보는 이미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인 폴 베를렌에게 자신의 시를 보냈다. 소년의 재능에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그를 파리로 불러들였다.

이 무렵 랭보가 쓴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취한 배〉다. 정박할 항구를 잃고 격랑 속을 떠도는 배의 환상적인 여정을 그린 이 시는 훗날 랭보 자신의 생애를 예고하는 듯하다. 그는 전통적인 운율과 질서를 깨뜨리고, 감각과 이미지가 서로 뒤섞이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려 했다.

랭보는 시인이란 평범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흔들고 뒤집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만 노래하는 대신 추함과 광기, 욕망과 죄의식까지 언어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문단에 등장한 시간은 짧았지만, 시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든 흔적은 깊었다.


베를렌과의 사랑, 그리고 브뤼셀의 총성

파리에서 만난 랭보와 열 살 연상의 유부남 시인 베를렌은 격렬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파리와 브뤼셀, 런던을 떠돌며 함께 시를 쓰고 가난과 방탕, 갈등의 시간을 통과했다.

서로의 문학적 재능을 자극한 관계였지만, 사랑만큼 상처도 깊었다. 불안과 질투, 술과 폭력이 뒤엉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1873년 7월 10일,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떠나려는 랭보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총탄은 랭보의 왼쪽 손목을 다치게 했다. 베를렌은 체포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두 시인의 불꽃 같던 동행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랭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붙들고 있던 원고를 완성했다. 사랑의 폐허와 시적 야망의 좌절, 종교와 도덕에 대한 반항, 자기 자신을 향한 환멸이 한데 뒤엉킨 작품,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다.


삶의 잿더미에서 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가 1873년 브뤼셀에서 자신의 뜻으로 인쇄한 유일한 단행본이다. 본문 마지막에는 ‘1873년 4월~8월’이라는 집필 시기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서정시집과는 다르다. 산문과 시, 고백과 환상, 독백과 자기 심문이 뒤섞인 긴 산문시에 가깝다.

‘나쁜 피’, ‘지옥의 밤’, ‘어리석은 처녀와 지옥의 신랑’, ‘착란’, ‘불가능’, ‘섬광’, ‘아침’, ‘작별’로 이어지는 글에는 뚜렷한 사건보다 한 인간의 의식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려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작품 속 화자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며 신앙과 도덕, 사랑과 욕망, 시인으로서의 야심을 차례로 의심한다. 자신의 방황을 변명하는가 싶다가도 곧바로 스스로를 조롱한다. 구원을 갈망하면서도 다시 절망 속으로 몸을 던지고, 새로운 아침을 바라보다가도 그 빛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한 청년의 고백을 엿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 안에 세워놓은 가장 어두운 법정에 들어가, 스스로 피고인이자 검사이며 재판관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랭보가 말한 ‘지옥’은 어디인가

랭보의 지옥을 한 가지 의미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죄와 심판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지옥이면서, 사랑이 파괴된 자리다. 자신이 꿈꾸었던 시적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예술가가 경험하는 정신적 파국이며, 자기혐오와 오만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내면의 감옥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의 지옥은 당시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엄격한 가정과 학교, 종교적 권위, 전쟁과 정치적 혼란, 체면과 질서를 앞세운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는 예민한 소년에게 숨 막히는 감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이를 ‘귀족 사회에 대한 고발’로만 읽는 것은 작품의 폭을 좁힐 수 있다. 랭보가 저항한 대상은 특정 계급만이 아니라 권위와 위선, 획일적인 도덕으로 개인의 욕망과 언어를 길들이려는 사회 전체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모든 책임을 세상에 돌리지 않는다. 자신 역시 오만과 욕망, 폭력성과 독단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세상을 향해 던진 고발장이면서, 자기 자신을 피고석에 세운 심문 기록이다.


열아홉 살의 책, 스무 살 무렵의 침묵

랭보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펴낸 뒤 곧바로 공식적인 ‘절필 선언’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산문시집 "일루미나시옹"에 포함될 일부 작품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그는 문학 작품을 사실상 더 쓰지 않았다. 문학사 전체를 뒤흔든 시인이 자신의 재능이 막 피어나던 시기에 돌연 펜을 놓은 것이다.

그가 왜 시를 버렸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언어로 세계를 바꾸려 했던 실험에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고, 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혹은 문학보다 더 멀고 낯선 삶을 직접 통과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랭보가 시인의 명성을 붙들고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미련 없이 버리고, 전혀 다른 생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인을 버리고 세계를 떠돈 방랑자

절필 이후 랭보의 삶은 한 편의 모험담처럼 이어졌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고 네덜란드 식민지군에 입대해 인도네시아 자바섬까지 갔다가 탈영했다. 키프로스에서는 채석장 감독으로 일했고, 마침내 아라비아반도의 아덴과 동아프리카 하라르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커피와 가죽, 상아 등 여러 물품을 거래하는 상인이 됐다. 한때 총기를 운송·거래하는 사업에도 관여했지만, 그의 후반생 전체를 단순히 ‘무기상’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그는 상인이자 탐험가였으며, 아프리카 내륙의 지리와 언어를 기록한 관찰자이기도 했다.

시인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장부와 거래, 험난한 이동만 남은 듯했다. 그러나 사막을 횡단하고 낯선 도시를 오가던 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미 〈취한 배〉 속에 나타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항구를 떠난 배처럼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다.


서른일곱 살, 너무 짧았던 두 번째 생애

1891년 랭보는 오른쪽 무릎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프랑스 마르세유로 돌아와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해 11월 10일, 그는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프리카의 흙먼지 속에서 상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베를렌을 비롯한 문인들이 랭보의 작품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루미나시옹》은 1886년 랭보가 관여하지 않은 채 출간됐고, 그가 문학을 등진 사이 그의 이름은 오히려 문학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랭보는 자신이 훗날 현대시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를 비롯한 현대 문학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앙드레 지드와 알베르 카뮈는 물론, 음악가 밥 딜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기자의 책갈피 "우리 안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법"

랭보의 문장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사회가 정한 성공과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쉽게 문제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누구보다 민감하게 시대의 모순을 감지하는 청소년과 청년의 목소리는 종종 철없음이나 반항이라는 말로 축소된다.

정해진 길을 의심하면 방황한다고 말하고,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적응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세상의 잣대가 한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오면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랭보가 빠져나오려 했던 지옥은 사라진 과거가 아닐지 모른다. 위선적인 질서에 순응하라는 압력 속에,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마음속에,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피고석에 세우는 우리의 내면에 그 지옥은 되풀이된다.

하지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마지막에는 희미하게나마 ‘아침’과 ‘작별’이 놓여 있다. 완전한 구원의 선언은 아니지만, 자신의 지옥을 똑바로 바라본 사람이 더는 그곳에 머물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랭보는 평생 시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해 동안 남긴 문장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언어의 문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오래 빛났는가보다, 잠시라도 얼마나 강렬하게 어둠을 밝혔는가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랭보는 너무 일찍 타올랐고 너무 빨리 사라졌다. 하지만 그 짧은 빛은 아직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을 가두고 있는 지옥은 어디인가.


▲ 아르튀르 '랭보'(이미지출처=ChatGPT)


-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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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 삶은 모든 마음이 열리고 모든 포도주가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미(美)'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가 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정의에 맞서 무장을 갖추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내 안에서 인간의 희망을 모두 지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희망의 목을 누르기 위해,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침하게 솟구쳤다.

나는 사형 집행인을 불러들여,
죽어가며 그들의 총 자루를 깨물고자 했다.
나는 재앙을 불러들여, 모래와 피로 목이 막히고자 했다.
불행은 나의 신(神)이었다.
나는 흙탕물 속에 누웠다. 나는 범죄의 공기에 몸을 말렸다.
그리고 광기에게 아주 멋진 장난을 쳤다.

그리고 봄은 나에게 희극배우의 무서운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내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
옛 축제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라면 아마도 내 식욕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친절이 바로 그 열쇠이다.
이런 영감이 나오다니, 내가 꿈을 꾸었던 것인가!

"너는 여전히 하이에나로구나..." 마귀가 소리친다,
그토록 멋진 제비꽃을 나에게 씌워 주었던 마귀가.
"너의 그 모든 욕망과, 너의 이기심과,
너의 모든 대죄(大罪)로 죽음을 얻어라."

아! 나는 그 모든 것을 너무 많이 받았다.
하지만, 친애하는 사탄이여, 당신에게 청하노니,
그렇게 분노에 찬 눈빛을 거두어 주시오!
그리고 몇 가지 뒤늦은 비열함을 기다리며,
글쓰기에 있어 묘사하거나 성찰하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내 끔찍한 단망록(斷忘錄)에서 
몇 장을 찢어 당신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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