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자의 뉴스정원] 소설 '거인의 정원'을 통해 바라 본, 높은 담을 허무는 소소한 골목길 문화들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09-07 07:11:59 댓글 0
▲ 오스카 와일드 '거인의 정원 The Selfish Giant'(사진출처=시민들 이해를 위해 AI생성)


높은 담장은 정원을 지킬 수 있었지만 봄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작은 발걸음은 거인이 지켜온 견고한 세계를 조금씩 흔들었다. 처음에는 돌 하나가 움직였고, 작은 틈이 생겼으며, 마침내 닫혀 있던 정원으로 봄이 들어왔다.

우리 도시의 오래된 골목에서 피어나는 작은 문화도 이와 닮았다.


몇 평 남짓한 독립서점, 관객 몇 명을 앞에 둔 소규모 공연, 이름 없는 작가의 첫 전시, 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골목 축제는 거대한 문화의 담장과 비교하면 작고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사람들이 쌓아 올린 무관심의 벽에 틈을 내고, 닫혀 있던 도시의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불러들인다.


아름다움 뒤에 인간의 슬픔을 심은 작가,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소설과 희곡, 시와 동화를 넘나들며 아름다움과 인간의 욕망, 위선과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다.

화려한 재치와 날카로운 풍자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사로잡았지만, 그의 동화에는 웃음보다 가난한 이들과 외로운 존재를 향한 깊은 연민이 흐른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소유와 희생, 배제와 용서, 죽음과 구원에 관한 질문이 숨어 있다.

"거인의 정원(The Selfish Giant)"은 1888년 5월 출간된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에 실린 다섯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는 "행복한 왕자"와 "나이팅게일과 장미" 등 와일드의 대표 동화도 함께 수록됐다. 


아이들을 내쫓자 정원에서 봄이 사라졌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그는 정원은 오직 자신의 것이라며 아이들을 쫓아내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은 담장을 세운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뒤 정원에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세상 모든 곳에 봄이 왔지만 거인의 정원만은 겨울에 붙들린다.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고 새도 노래하지 않는다. 눈과 서리, 북풍과 우박만이 텅 빈 정원을 차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장에 난 작은 틈으로 아이들이 몰래 들어온다. 아이들이 나뭇가지에 올라앉자 얼어붙었던 나무마다 꽃이 피고 새들이 돌아온다. 아이가 앉은 곳마다 겨울이 물러나고 봄이 깨어난 것이다.

하지만 정원 한구석에는 여전히 겨울이 남아 있었다. 키 작은 아이 하나가 나무에 오르지 못한 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거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봄을 막아선 것은 매서운 북풍이 아니었다. 자신이 세운 높은 담장이었다.

거인은 조심스럽게 작은 아이를 들어 나뭇가지에 올려놓는다. 그 순간 나무에 꽃이 피고 아이는 거인의 목을 끌어안는다. 아이의 포옹은 굳게 닫힌 정원보다 먼저 거인의 마음에 세워진 담장을 허문다.

거인은 도끼를 들고 나가 자신이 세운 담장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정원을 아이들에게 돌려준다. 담장이 사라진 자리에 아이들의 웃음이 흐르고, 오랫동안 멈춰 있던 계절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 아이에게 숨겨진 이야기 …  겨울 너머 ‘낙원의 정원’으로

"거인의 정원"은 아이들이 봄을 되찾는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작품 후반에는 이 동화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상징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월이 흘러 늙은 거인은 자신이 나무에 올려주었던 작은 아이를 다시 만난다. 아이의 두 손과 두 발에는 상처가 나 있다. 거인이 누가 너를 다치게 했느냐며 분노하자 아이는 그것을 사랑이 남긴 상처라고 말한다. 이어 거인에게 자신의 정원, 곧 낙원으로 함께 가자고 한다.

그날 오후 사람들은 꽃이 가득 핀 나무 아래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둔 거인을 발견한다.

이 결말 때문에 작은 아이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손과 발의 상처, 사랑을 통한 용서, 낙원으로의 초대가 작품 전체를 단순한 계절 동화가 아닌 회개와 구원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거인이 무너뜨린 것은 돌로 쌓은 담장만이 아니라 타인을 밀어내며 스스로를 가뒀던 마음의 벽이었다.


오늘의 거인은 누구이며, 높은 담장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의 거인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유명한 예술만 예술이라고 여기고, 많은 관객이 모이는 무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거인이 될 수 있다. 자본과 이름, 규모와 흥행이 만든 문화의 경계도 높은 담장이 된다. 그 담장 바깥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햇빛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골목의 작은 서점에서 조용히 독자를 기다리는 한 권의 책, 낡은 건물의 지하 연습실에서 이어지는 젊은 음악가의 연주, 오래된 주택을 고쳐 만든 작은 전시장, 주민 몇 사람이 의자를 나르고 조명을 매달아 완성한 공연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거대한 문화산업의 중심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이 찾아와 책을 펼치고, 몇 명의 관객이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이웃이 전시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골목에는 이전과 다른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작은 문화가 세상의 모든 담장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다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돌 하나를 흔들 수는 있다. 그 돌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한 사람의 발길이 지나가며,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그렇게 생긴 작은 틈들이 이어질 때 담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단단할 수 없다.


▲ 독립서점과 공방, 작은 공연이 어우러져 오래된 골목에 사람과 봄을 불러들이는 모습(사진출처=시민들 이해를 위해 AI생성)


담장 너머의 작은 문을 여는 ‘정기자의 뉴스정원’

‘정기자의 뉴스정원’은 세상에 채 알려지지 않은 골목의 문화와 작은 예술을 찾아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이름 없는 작가의 첫 책과 소규모 전시, 동네 공연과 독립서점의 이야기, 지역에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일구는 사람들을 만난다. 화려한 조명이나 거대한 무대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심과 시간, 사람의 온기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단순히 작은 문화행사를 알리는 일이 아니다. 높은 담장 뒤에 가려진 정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시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내는 일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간과 공연, 전시, 문화행사 또는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와 특별한 이웃의 소식이 있다면 사진과 간단한 내용을 정기자에게 보내면 된다.

문화소식 제보: jnoog@naver.com


정기자의 한마디

거인의 담장은 단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들려오는 작은 노랫소리 하나가 돌을 흔들고, 이름 없는 작가의 문장 한 줄이 틈을 만든다. 작은 전시를 찾아온 한 사람의 발걸음과 이웃끼리 건넨 인사 한마디가 그 틈을 조금 더 넓힌다.

소소한 골목 문화가 소중한 까닭은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는 문화의 담장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담장이 무너진 자리에는 길이 생긴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만나고, 외면받던 이야기가 햇빛을 보며, 오래 겨울에 머물던 도시의 한구석에 봄이 찾아온다.

‘정기자의 뉴스정원’이 작은 문화뉴스를 찾아 시민들에게 소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작은 소식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누군가의 마음에 난 담장을 흔들 수는 있다. 그런 흔들림이 모이면 높은 벽도 끝내 무너진다.

오스카 와일드의 정원에 봄을 데려온 것은 거대한 영웅이 아니었다. 담장의 틈을 지나온 아이들의 작은 발걸음이었다. 오늘 우리 골목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문화 역시, 도시의 봄을 불러오는 바로 그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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