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빛을 품은 한국의 자개, 세계 정상의 눈길을 사로잡다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11-06 15:07:35 댓글 0
- 조개껍데기에 새긴 장인의 시간…빛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
- 고려의 섬세함에서 오늘의 외교 선물까지, 세계에 전하는 우리 문화의 품격
▲ 참고 사진. 2025년 11월 1일 경북 경주시 소노캄 그랜드볼룸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빈만찬에 앞서 양국의 선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 전통 나전기법으로 제작한 자개 원형쟁반을 선물하며 오랜 한·중 우호관계의 계승과 발전을 기원했다.(사진출처=대통령실. 대한민국정책브리핑)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조개는 바다에서 태어나지만, 그 빛은 오랜 세월 사람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파도에 씻기고 모래에 닳아온 작은 껍데기 하나가 장인의 손에 들리면, 어느 순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무늬가 된다. 수없이 잘라내고 갈아 붙인 조각들은 하나의 꽃이 되고, 구름이 되고, 때로는 한 나라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언어가 된다.

우리나라 전통공예인 나전칠기(螺鈿漆器)가 세계 정상 간 외교 무대에서 다시 한번 한국 문화의 깊이를 드러냈다.

지난 2025년 11월 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중 정상 간 친교 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국 전통 나전기법으로 제작한 자개 원형쟁반을 선물했다.


양국 정상이 선물을 살펴보는 자리에는 한국의 전통공예품이 놓였다. 조명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자개 장식은 오랜 세월 이어온 한국 장인들의 미감과 손기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물이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에는 이 대통령이 선물을 소개하고 시 주석이 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화려한 외교 의전의 한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전통문화가 국경을 넘어 전해지는 또 다른 의미가 자리하고 있다.

나전칠기는 조개껍데기 안쪽의 진주층을 얇게 가공해 나무나 칠기 표면에 장식하는 전통공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푸른색과 보랏빛, 은빛이 교차하는 자개의 아름다움은 인공적인 색채만으로는 쉽게 재현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나전칠기는 섬세한 문양과 정교한 제작기법, 옻칠의 깊은 색감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빛나는 표면에 머물지 않는다. 한 조각의 자개를 붙이기 위해서는 재료를 고르고, 얇게 가공하고, 문양에 맞춰 다듬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그 위에 여러 차례 옻칠을 하고 표면을 다듬어야 비로소 작품의 빛이 살아난다.

조급한 손길로는 완성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한국 나전칠기의 역사는 고려시대에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와 불교미술 등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공예문화를 보여주는 유산으로 평가된다. 작은 자개 조각으로 정교한 문양을 구성하고 옻칠의 깊은 검은빛과 대비시키는 기술은 오늘날에도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 유물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소장돼 있다. 이는 한국 전통공예가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어 전해졌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미술사 속에서 연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나전칠기는 생활용품과 가구, 장식품 등에 폭넓게 활용됐다. 장롱과 함, 문갑과 소반 등 일상의 물건에 자개를 입히며 실용성과 장식미를 함께 추구했다.

어머니의 혼수 장롱에 반짝이던 꽃무늬, 오래된 안방의 자개 문갑, 할머니가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던 작은 함에도 그 역사는 남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가구나 장식품이 아니었다. 한 집안의 세월을 품고, 가족의 기억을 간직하며, 대를 이어 전해지던 생활 속의 예술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생활양식의 변화 속에서 전통 자개공예는 한동안 낡은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빠르게 생산되는 공산품과 새로운 주거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전통 가구와 공예품은 점차 일상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자개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나전칠기는 전통 가구를 넘어 현대적인 생활소품과 장신구, 예술작품, 문화상품 등으로 표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오래된 기법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시도는 전통공예가 박물관 안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문화임을 보여준다.

특히 나전칠기가 지닌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인간의 감각과 기술로 다시 완성한다는 데 있다.

조개껍데기 하나에도 바다의 시간이 쌓여 있다. 장인은 그 작은 조각을 버리지 않고 빛이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수많은 조각을 이어 하나의 문양으로 완성한다.

어쩌면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은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지켜온 삶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하고, 느린 시간을 견디며, 서로 다른 조각들을 조화로운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번 한·중 정상 간 선물 교환은 그런 한국 전통공예의 가치를 국제 외교 현장에서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국가 정상에게 전달하는 선물은 물건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그 나라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자개 원형쟁반에 담긴 것은 단순한 장식의 화려함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장인의 기술과 자연을 바라보는 미적 감각, 그리고 전통을 오늘의 문화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함께 담겨 있다.

세계가 빠른 기술과 새로운 산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도, 수백 년 전 장인의 손에서 시작된 작은 자개 조각은 여전히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균일한 빛과 달리 자개는 보는 위치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같은 작품을 바라보더라도 아침과 저녁의 색이 다르고, 한 걸음 옮겨 서면 또 다른 무늬가 나타난다.

그 변화 속에서 전통공예는 말없이 자신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경주의 외교 현장에서 빛난 자개쟁반은 우리 문화가 세계와 만나는 또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작은 조개껍데기가 장인의 손을 거쳐 한 나라의 품격을 전하는 선물이 되기까지, 그 안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과 정성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빛은 오늘도 새로운 세대의 손끝에서 이어지고 있다.

천년을 건너온 한국의 자개는 그렇게 말한다. 오래된 것은 반드시 낡은 것이 아니며, 오랜 시간을 견딘 아름다움은 시대가 달라져도 다시 빛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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