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일단 승리했다.
하지만 승부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위해 넘어야 할 고개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긴 호흡으로 상황을 지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법원, “합병 문제 없다”며 삼성 손 들어 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1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제시한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은 관련 법령에 따라 주가에 따라 산정된 것"이라며 "산정기준 주가가 부정행위로 형성됐다고 볼 자료가 없는 이상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 경영진이 주주 이익과 관계없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 즉 제일모직 및 그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됐고 제일모직 주가가 고평가됐다며 합병의 시기를 문제 삼았지만 재판부는 "회사의 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주가 역시 시시각각 변동하는 것"이라고 봤다.
엘리엇이 제시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주가에 대해서도 "공개시장에서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는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8∼9조원의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서도 "회사 보유자산은 주가 형성 요소 중 하나의 불과하다"고 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부당하다며 지난달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을 냈다.
◆아직 안심하기 일러...가야 할 길 ‘첩첩산중’
17일 열릴 합병주총까지 삼성이 넘어야 할 큰 고비는 여럿이다.
우선 당장 삼성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판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ISS는 2~3일경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공식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ISS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로 세계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해 기관투자자들에게 의결권 행사 방향을 조언한다.
당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삼성물산 지분 10.15%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행보도 지켜봐야 한다.
삼성 측 우호 지분율은 자사주를 인수한 KCC를 포함하더라도 20%에 못 미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합병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위)를 열고 찬반 의사를 결정할 계획이다. 앞서 의결권위는 SK와 SK C&C의 합병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엘리엇이 제기한 또 다른 가처분 신청 건인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에 대한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원은 17일 전에 결정하겠다면서 판단을 보류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이 우호 관계에 있는 KCC에 넘긴 자사주 899만주(5.76%)의 의결권의 행사 여부에 대한 판단에 따라 표 대결 판세가 완전히 바뀐다.
만약 엘리엇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KCC에 매각된 5.76%의 지분은 의결권이 사라지게 된다. 엘리엇 입장에선 단숨에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것으로 예견되는 일성신약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일성신약은 삼성물산 지분 2.11%을 보유하고 있다.
윤석근 일성신약 윤석근 대표이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합병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면서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합병 막판에 일성신약이 모양새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