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색 환경정책 리포트]  “쓰레기장에 버리기 전에 가져가세요”…체코가 실험하는 ‘버리지 않는 도시’

정이든 청년기자 기자 발행일 2026-08-10 07:29:30 댓글 0
- 프라하 쓰레기 수거장에 ‘무료 나눔 공간’ 설치…멀쩡한 물건은 폐기물 아닌 자원
- 2025년 Reuse Point에 약 2만3000개 물품 들어와 78% 새 주인 찾아
- 국립공원에는 야생동물을 위한 ‘Quiet Area’ … 사람의 이동 자체를 환경정책으로 관리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체코가 거창한 첨단기술이 아닌 ‘버리지 않는 생활방식’과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공간’을 환경정책의 한 축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수도 프라하의 정책은 눈길을 끈다. 시민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장소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이 버린 물건을 무료로 가져올 수 있다. 쓰레기 수거장을 폐기물의 마지막 장소가 아니라 물건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일종의 ‘환승역’으로 바꾼 것이다.

체코의 환경정책에서 읽을 수 있는 특징은 명확하다. 재활용만 잘하는 것보다 애초에 물건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쓰레기장 안에 들어선 ‘무료 상점’ … 프라하 Reuse Point


▲ 프라하 Reuse Point(사진출처=프라하시 공식 계정)


프라하시는 시내 폐기물 수거시설에 이른바 ‘Reuse Point’를 운영하고 있다.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민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왔을 때 깨끗하고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폐기물로 버리지 않고 별도의 Reuse 공간에 맡긴다. 다른 시민은 이곳을 둘러보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일반 가정에서 사용할 정도의 수량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접시와 각종 생활용품부터 소형 가구, 책, 장난감, 스포츠용품 등이 대상이다. 즉 한 시민에게는 ‘쓰레기’가 될 뻔했던 물건이 다른 시민에게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 된다.

프라하시는 이를 단순한 중고품 나눔사업이 아니라 도시의 순환경제 정책으로 보고 있다. 물건의 수명을 연장하면 새로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동시에 폐기물 발생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의 특징은 시민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을 등록하거나 구매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사용 가능한 물건만 별도로 넘기면 된다. 환경정책에서 시민의 참여 절차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 셈이다.


2만3000개 물건 중 78%가 다시 가정으로

성과도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프라하시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0개 Reuse Point에 들어온 물건은 약 2만3000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78%가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버려질 가능성이 있었던 물건 10개 가운데 약 8개가 다시 사용된 셈이다.

Reuse Point의 숫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6년 1월 프라하 3구와 14구에 새로운 시설이 추가됐고, 이후 프라하시 공식 Reuse 포털은 시내 Reuse Point 네트워크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 정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재활용’보다 한 단계 앞선 정책이라는 데 있다. 페트병을 수거해 다시 플라스틱 원료로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의자나 접시, 책, 장난감을 그대로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재활용 공정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환경정책의 우선순위를 ‘재활용(Recycling)’에서 ‘재사용(Reuse)’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물물교환장 … ‘Reuse Day’


▲ 프라하 거대한 물물교환장 ‘Reuse Day’ (사진출처=프라하시 공식 계정)


프라하는 Reuse Point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 곳곳에서 ‘Reuse Day’도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의류와 신발, 책, 장난감, 주방용품, 스포츠용품 등을 가지고 나와 서로 무료로 교환하는 행사다.

단순한 벼룩시장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현장에서는 물건 교환뿐 아니라 의류나 소형 전자제품 수리, 업사이클링 체험, 어린이 프로그램, 지속가능한 소비와 슬로패션 관련 교육도 진행된다.

2025년에는 프라하 22개 자치구에서 Reuse Day가 열렸다. 프라하시 집계에 따르면 행사에는 1만2000명 이상이 방문했고, 시민들이 가져온 의류·신발·책·장난감·생활용품 등은 총 22.5톤에 달했다.

2026년에도 이 사업은 이어지고 있다. 봄과 가을에 걸쳐 프라하 각 자치구에서 행사가 예정돼 있으며 프라하시는 Reuse Day를 도시의 정례적인 환경·지역공동체 프로그램으로 확대하고 있다. 환경정책이 행정기관의 분리수거 지침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축제로 변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버리지 말고 고쳐 쓰는 법’ 가르친다

프라하의 Reuse 정책은 학교에도 들어갔다. 프라하시는 ‘Reuse na školách(학교에서의 Reuse)’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가구와 생활용품을 직접 고치고 다시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목표는 단순하다. 고장 난 물건을 곧바로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소비습관에서 벗어나 수리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경험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프라하시는 이러한 수리·재사용 교육을 순환경제 정책의 일부로 추진하고 있다.

결국 Reuse Point에서 물건을 나누고, Reuse Day에서 교환하고, 학교와 교육시설에서 직접 고치는 방법까지 배우는 구조다. ‘수거→소각·매립’으로 끝났던 기존 폐기물 정책을 ‘수리→교환→재사용→최종 폐기’로 최대한 길게 늘리는 것이다.


더 독특한 환경정책은 산에 있다 … 사람에게 ‘조용히 비켜달라’

체코의 또 다른 이색적인 환경정책은 크르코노셰(Krkonoše) 국립공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Quiet Area’, 체코어로 ‘Klidová území’라고 부르는 특별구역이 있다. 말 그대로 자연에게 ‘조용한 공간’을 내주는 정책이다.

크르코노셰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국립공원에는 모두 8개의 Quiet Area가 지정돼 있다. 이 지역은 사람의 과도한 출입으로부터 민감한 생태계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됐으며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 이동하는 것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현장 표시 방법도 독특하다. 나무에 붉은색 띠를 표시하거나 도로와 탐방로에 별도의 표지판을 설치해 Quiet Area의 경계를 알린다. 관광객에게 자연을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는 인간의 접근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다.


드론도 마음대로 못 띄운다

Quiet Area뿐만 아니다. 크르코노셰 국립공원에서는 야생동물과 탐방객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해 드론 운용도 강하게 제한된다. 국립공원관리청은 드론을 비롯한 무인비행체가 특히 조류 등 야생동물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제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공원 전역에서는 불꽃놀이도 금지돼 있으며, 지정된 장소 외 캠핑과 불 피우기, 도로를 벗어난 자동차·카라반 출입 등도 제한된다. Quiet Area에서는 지정 탐방로를 벗어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다.

겨울철에는 야생동물의 안정적인 월동을 위해 일부 도로의 출입을 별도로 제한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자연을 최대한 개방한 뒤 훼손행위를 단속하는 방식과 달리, 생태적으로 민감한 곳은 애초부터 인간의 활동량을 줄인다는 접근이다.


기자의 시선 "체코 환경정책의 핵심은 ‘시민에게 불편하지 않은 절제"

프라하의 Reuse Point와 크르코노셰 국립공원의 Quiet Area는 서로 전혀 다른 정책처럼 보인다. 하나는 도시의 쓰레기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공원의 생태계 보호 문제다.

그러나 두 정책을 관통하는 원칙은 비슷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멀쩡한 물건을 굳이 폐기하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굳이 새로 생산하지 않는다. 야생동물이 살아야 할 공간에 사람이 굳이 들어가지 않는다.

특히 프라하의 정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민들에게 환경보호를 위해 무조건 소비를 줄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오면 되고, 필요한 사람은 무료로 가져가면 된다. 환경보호와 생활비 절약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다.

한국 역시 재활용 분리배출에서는 높은 시민 참여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폐기물 정책의 상당 부분은 ‘버린 다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체코 프라하의 사례는 질문의 순서를 바꾼다. ‘어떻게 잘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이 물건을 정말 버려야 하는가’부터 묻는다. 탄소중립 시대의 환경정책이 반드시 거대한 발전시설이나 최첨단 탄소포집기술에서만 출발할 필요는 없다.

의자 하나를 더 쓰고, 책 한 권을 다른 사람이 다시 읽고,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산길 하나를 사람이 양보하는 것. 체코의 이색 환경정책은 가장 오래된 환경 원칙인 ‘덜 버리고, 덜 소비하고, 자연에 덜 개입하는 것’을 도시 행정과 국립공원 관리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지방정부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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