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 경제 칼럼] 메모리가 반도체의 전부가 됐다

전연우 칼럼니스트 기자 발행일 2026-08-16 12:54:35 댓글 0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가격은 400% 뛰고, 애플조차 물량을 못 구한다

올해 말까지 D램 가격이 연초 대비 400% 오를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 해 사이 가격이 다섯 배 가까이 뛴다는 뜻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수치다. 그리고 이 폭등의 중심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다.

▲ 전연우 칼럼니스트


숫자로 보는 초호황


올해 상반기 세계 반도체 매출은 702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 늘었다. 반도체 시장 전체가 1년 만에 두 배로 커졌다는 뜻이다. 이 성장을 이끈 건 메모리 반도체였다. 같은 기간 메모리 부문 매출은 305% 급증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가 사상 처음으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60%를 차지할 거라고 전망한다. 한때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가 균형을 이루던 시장에서, 이제 메모리 홀로 시장의 절반을 훌쩍 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배경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생성형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업체들은 생산 역량을 HBM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기존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 여력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한쪽을 채우기 위해 다른 쪽을 비우는 구조가, 지금의 극심한 공급 부족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3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40~50%, 4분기에는 30~40% 추가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해 두 번의 분기를 거치며 가격이 두 배 넘게 뛰는 셈이다.


SK하이닉스, 25년 만의 권좌 교체

이 흐름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주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 반 동안 국내 반도체지수는 561% 뛰었다. 올해 들어서만 삼성전자 주가는 194.83%, SK하이닉스 주가는 348.39% 상승했다.

지난해에도 각각 125.38%, 274.35% 올랐던 걸 감안하면, 2년 연속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그 결과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앞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25년 7개월 만에 코스피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바뀐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증시의 대명사였던 삼성전자가 같은 업종 안에서 왕좌를 내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지금 메모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드리우는 그림자, 반도체 공급난

이 공급난은 이미 실물 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애플은 부품 재고 부족 여파로 일부 맥북에어 모델의 출고를 9월 중순으로 미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회사조차 원하는 시점에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메타는 메모리 비용 상승을 이유로 올해 자본지출 전망치를 100억 달러 늘려 잡았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5년 이상 장기 공급 계약으로 물량을 선점하면서, 일반 소비재용 메모리 칩의 수급은 더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 웃고 있다

이 국면에서 가장 웃는 쪽은 한국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113조9832억 원, 연간으로는 삼성전자 360조7551억 원, SK하이닉스 260조9819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데, 두 회사를 합치면 올해 600조 원, 내년에는 1000조 원을 돌파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내년 영업이익이 전망치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479조5465억 원, SK하이닉스 371조5932억 원으로, 이 숫자가 실현되면 두 회사는 나란히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순위 1위와 3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몇 달 전만 해도 이 지면에서 반도체 쏠림과 그로 인한 시장 변동성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다뤘던 것과는 결이 다른 국면이다. 실적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지금 이 두 회사는 역대 가장 유리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근거

반도체 업계 사람들에게 '슈퍼사이클'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사이클이 늘 정점을 지나면 무너져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호황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구조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며 실적 변동성이 컸다. 호황일 때 너도나도 설비 투자를 늘렸다가,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하고 다시 불황을 맞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번엔 거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빅테크 기업들이 5년 단위의 장기공급계약으로 물량을 미리 확보하면서, 메모리 업체 입장에서는 향후 몇 년 치 판매처와 가격이 상당 부분 확정된 상태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도 내년 HBM 판매 계약을 수익성이 보장되는 선에서만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급 과잉이 이 사이클을 조기에 끝낼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규 생산 능력을 늘려도 그 대부분이 HBM에 투입되는 구조라, 일반 메모리 공급이 갑자기 넘쳐날 가능성 자체가 낮다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기의 대가

다만 이 호황이 모두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최근 국내 컴퓨터와 휴대전화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는데,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이 메모리 가격 상승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외 빅테크에 물건을 비싸게 팔수록, 국내 PC 제조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같은 값에 부품을 조달해야 한다.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힘을 갖게 된 결과가, 정작 한국 소비자에게는 가전제품 가격 인상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인가, 구조 전환인가

그렇다고 이 호황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장기공급계약이 변동성을 줄인다지만, 그 계약이 전제하는 수요 자체가 꺾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오라클이나 브로드컴 같은 AI 관련 기업들의 실적 발표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AI 투자 둔화 우려가 곧바로 부각되고, 그 우려는 메모리 수요 전망에도 그대로 옮겨붙기 때문이다. 지금은 증권가 다수가 AI 버블론을 시기상조로 보고 있지만, 이런 경계심이 계속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호황의 지속 가능성이 완전히 검증된 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 특히 수출과 증시가 반도체 두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이미 여러 번 이 지면에서 지적한 위험이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앞지른 사건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변이지만, 동시에 한국 증시 전체가 메모리라는 단 하나의 업종, 그 안에서도 단 두 개 기업의 실적 흐름에 얼마나 크게 걸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의 초호황이 실적으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만큼 한국 경제 전체가 메모리 가격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 더 크게 걸리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황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흐름이 꺾일 때 감당해야 할 충격의 크기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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