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형 또는 플러시 도어 손잡이는 평소 차체 표면과 거의 같은 높이로 들어가 있다가 스마트키가 접근하거나 운전자가 손잡이를 누르면 밖으로 나오거나 한쪽이 들리는 구조다.
모든 매립형 손잡이가 전동식인 것은 아니다. 손으로 한쪽을 눌러 반대편을 잡아당기는 기계식 손잡이도 있고, 모터가 손잡이를 밀어내는 전동식도 있다.
차 안쪽 개방 방식도 다르다. 일반 손잡이를 당겨 기계적으로 문을 여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버튼을 누르면 전기신호가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차량도 있다.
일부 차량은 평상시 사용하는 전자식 버튼과 별도로 정전·사고 때 사용할 기계식 비상개방 레버나 케이블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상장치의 위치와 작동법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운전석과 앞좌석은 눈에 잘 띄는 레버를 당기면 열리지만 뒷좌석은 도어 포켓 안쪽, 스피커 덮개 아래, 매트나 수납공간 안쪽에 케이블이 숨겨진 차종도 있다.
앞문과 뒷문의 방식이 다르거나 차량의 연식과 좌석 위치에 따라 장치 유무가 달라지는 사례도 있어 다른 차에서 익힌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전자식 문이라고 해서 사고 때 반드시 열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충돌신호를 감지해 자동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차량도 있다.
그러나 사고 충격으로 배선이나 제어장치가 손상되거나 저전압 배터리의 전력이 부족하면 전자식 개방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탑승자는 기계식 비상개방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차량 밖의 구조자에게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전원이 끊겨 매립형 손잡이가 나오지 않으면 기계식 장치가 차 안에 있더라도 외부에서 문을 열기 어려울 수 있다.
사고로 문틀이 변형되거나 잠금장치가 물리적으로 손상된 경우에는 손잡이가 정상이어도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전자식 고장’과 ‘차체 변형’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위험이 실제 안전조사로 이어졌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25년 저전압 공급이 부족해 외부 전자식 도어 손잡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신고와 관련해 2021년형 테슬라 모델Y 약 17만4천 대를 대상으로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NHTSA 조사 관련 보도에 따르면 신고 사례 가운데는 외부에서 어린이를 꺼내기 위해 유리창을 깨야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조사는 결함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므로 조사 착수 자체를 결함 확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국 의회에서도 전기차의 기계식 비상개방장치를 쉽게 찾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SAFE Exit Act’가 2026년 발의됐다. 법안은 비상개방장치의 위치와 표시를 알기 쉽게 하고, 구조자가 차량 밖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다룬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새 기준은 2027년 1월 1일부터 새로 출시되는 차량에 차 안과 밖에서 작동할 수 있는 기계식 개방 기능을 요구한다.
외부 손잡이는 손으로 잡을 공간을 확보하고, 내부 장치는 탑승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위치와 표시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 승인 차량에는 2029년까지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에서도 충돌 이후 차량 문을 열고 탑승자를 구조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보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매립형이라는 디자인 자체보다 전원이 사라진 뒤에도 문을 기계적으로 열 수 있는지, 장치가 눈에 잘 띄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지가 안전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국내 자동차 안전기준에는 문과 잠금장치의 구조, 충돌 때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성능 등 일반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공개된 기준을 기준으로 보면 매립형 외부 손잡이와 전자식 내부 개방장치에 대해 비상용 기계식 장치의 위치·표시·작동방식을 차종 간 동일하게 만드는 별도 세부기준은 확인하기 어렵다.
기존 기준은 주로 충돌 중 탑승자가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문이 닫힌 상태를 유지하는 성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는 충돌 후 탑승자 스스로 탈출하거나 구조대가 문을 신속히 열 수 있는 ‘사후 개방성’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시민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차량에 기계식 비상개방장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차량 사용설명서에서 ‘비상시 도어 열기’, ‘수동 도어 개방’, ‘기계식 잠금 해제’ 등의 항목을 찾아 운전석뿐 아니라 조수석과 뒷좌석의 위치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덮개를 열거나 수납함 안쪽의 케이블을 당겨야 한다면 덮개 제거 순서와 당기는 방향도 익혀둘 필요가 있다.
단, 장치에 따라 실제 작동 시 내장재나 창문 장치가 손상될 수 있으므로 제조사가 허용한 방식 안에서 정차 상태로 위치와 동작 순서를 확인해야 한다.
어린이나 고령자에게는 말로만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좌석에서 어떤 장치를 찾아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평소 사용하는 전자식 버튼과 비상용 기계식 레버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줘야 한다.
렌터카나 공유차량을 이용할 때도 출발 전에 비상개방 방법을 간단히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유리창 파쇄도 만능 대책은 아니다. 차종에 따라 옆유리에 접합유리가 사용돼 일반 비상망치로 쉽게 깨지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차량에 강화유리와 접합유리 중 어떤 유리가 적용됐는지, 제조사가 안내하는 비상탈출 방법이 무엇인지 미리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정부와 제작사는 소비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비상개방장치가 있더라도 어두운 실내에서 찾기 어렵거나 뒷좌석 승객이 쉽게 사용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안전장치라고 보기 어렵다.
기계식 장치의 설치 여부뿐 아니라 좌석에서 손이 닿는 위치, 어둠 속 식별성, 통일된 그림표시, 어린이·고령자의 조작 가능성까지 평가해야 한다.
자동차의 첨단화는 손잡이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평소에는 매끈한 디자인을 유지하더라도 사고로 전원이 사라진 순간에는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안전장치는 위급한 순간에 처음 찾는 장치가 아니라, 구매 직후 위치와 사용법을 익혀두는 장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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