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수백만원” … 반려견·반려묘도 ‘실비보험’ 필요한 시대

정진욱 기자 발행일 2026-09-16 07:42:40 댓글 0
- 최근 2년 평균 치료비 102만7000원…2023년 조사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
- 펫보험 계약 25만건 돌파했지만 가입률은 여전히 한 자릿수
- 보장 공백·매년 재가입·최소 30% 자기부담…진료 표준화와 청구 간소화가 관건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반려견과 반려묘가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동물병원 진료비가 가계의 새로운 고정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피부질환이나 장염처럼 비교적 흔한 질환도 반복 치료가 필요하고, 노령기에 접어들면 심장·신장질환과 종양, 관절질환 등으로 수백만원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진찰과 검사, 수술, 입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호자가 사실상 전액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지출한 의료비의 일부를 보상하는 실손형 펫보험이 선택이 아닌 생활 안전망으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가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려동물 치료비(이미지출처=ChatGPT생성)


2년간 평균 치료비 102만7000원 … 고액 지출 가구 급증

KB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가구가 최근 2년 동안 지출한 반려동물 치료비는 평균 102만7000원으로 조사됐다. 2023년 조사 당시 57만7000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KB경영연구소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원 이상을 지출한 반려가구도 26.2%로 이전 조사 18.8%보다 7.4%포인트 증가했다. 주요 치료 항목은 피부질환이 46.0%로 가장 많았고 정기·장비검진이 43.9%로 뒤를 이었다. 치료비는 반려동물이 중장년기와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전국 82개 동물병원의 의료데이터 약 26만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연령에 따른 질환 변화가 확인됐다. 

반려견은 성체 이후 피부·비뇨기 질환이 늘고, 노령기에는 이첨판폐쇄부전과 신장질환 등 만성질환 비중이 높아졌다. 반려묘는 성체 이후 비뇨기·구강질환이 많아지고, 노령기에는 비대성 심근병증과 만성 신장질환,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증가했다. 한 차례 수술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검사와 약물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 분석

특히 MRI·CT와 같은 영상검사, 종양 수술과 항암치료, 골절·슬개골 수술, 심장질환 검사와 입원 치료가 겹치면 비용이 수백만원을 넘어설 수 있다. 치료비가 부담돼 검사나 수술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른바 ‘경제적 안락사’ 문제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펫보험 시장 1년 새 50% 성장 … 가입률은 여전히 낮아

치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펫보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말 국내 반려동물보험 보유계약은 약 25만건으로 전년보다 55.3% 증가했다. 원수보험료도 1291억원으로 61.1% 늘며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보험연구원이 제시한 2024년 기준 가입률은 약 2.1%에 불과하다. 일본 21.4%, 영국 반려견 25%·반려묘 12.1%, 스웨덴 반려견 90%·반려묘 50%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국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반려동물이 절대다수인 셈이다. 

가입률이 낮은 배경에는 보험료 부담과 복잡한 약관, 제한적인 보장범위가 있다. 이미 앓고 있던 질환은 원칙적으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고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중성화수술, 미용 목적의 처치도 일반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치과·구강질환, 피부질환, 슬개골·고관절 질환은 보험사와 특약에 따라 보장 여부와 대기기간이 다르다.

보호자가 ‘동물병원비는 모두 보상된다’고 생각하고 가입했다가 보험금 청구 단계에서 면책조항을 확인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펫보험은 사람의 실손의료보험과 비슷한 구조일 뿐, 모든 진료비를 돌려주는 상품은 아니다.


보장비율 최대 70% … 소액 진료는 보험금 없을 수도

2025년 5월부터 신규 펫보험의 핵심 조건도 달라졌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재가입 주기는 1년으로 짧아졌고, 최소 자기부담률 30%와 최소 자기부담금 3만원이 적용됐다. 과잉진료와 보험금 누수를 막고 손해율 급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주요 상품은 진료비의 50% 또는 70%를 보장하며, 건당 자기부담금은 대체로 3만원이나 5만원이다. 예를 들어 보장 대상 진료비가 10만원이고 70% 보장형이라도 약관의 계산방식과 자기부담금에 따라 실제 지급액은 7만원보다 적을 수 있다. 진료비가 자기부담금 이하라면 받을 보험금이 없을 수도 있다.

1년 재가입 구조에서는 반려동물의 나이와 치료 이력, 보험금 지급 실적에 따라 다음 해 보험료나 조건이 달라질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가입 당시 보험료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최고 재가입 연령, 갱신 시 보험료 인상 가능성, 보장 제외 질환과 면책기간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보험연구원이 비교한 주요 상품의 통원 1일 한도는 대략 10만∼30만원, 수술·입원 한도는 150만∼500만원, 연간 한도는 350만∼4000만원으로 차이가 컸다. 보장비율이 같아도 실제 고액 치료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상품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싼 보험’보다 자주 발생하는 질환을 먼저 봐야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의 품종과 나이, 가족력에 따라 보험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형견은 슬개골과 치과질환, 일부 품종은 피부·호흡기·심장질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려묘는 비뇨기와 신장, 구강질환의 보장 여부가 중요하다.

가입 전에는 다음 항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피부·구강·치과·슬개골·고관절 질환이 보장되는지
- 선천성·유전성 질환과 기존 질환의 제외 기준은 무엇인지
- 질병별 면책기간과 감액기간이 있는지
- 통원·입원·수술의 1일 한도와 연간 한도는 얼마인지
- 자기부담률과 건당 자기부담금이 각각 얼마인지
- MRI·CT·항암제 등 고액 진료가 포함되는지
- 보험료가 매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 보험금 청구에 진단서·진료기록·검사결과지가 필요한지
- 반려동물 사망·분실·배상책임·장례비가 의료비 담보와 별도인지

이미 질환이 발생한 뒤에는 해당 질병이 기존 질환으로 분류돼 보장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건강할 때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예방접종과 중성화, 정기검진처럼 보험에서 제외되는 비용까지 고려해 별도의 ‘반려동물 의료비 통장’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실비보험 활성화의 전제는 ‘진료비 투명성’

펫보험이 대중적인 안전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보험상품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진료도 병원과 지역에 따라 명칭과 비용이 다르면 보험사가 위험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고, 소비자도 보험료와 보장한도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힘들다.

정부는 2023년부터 전국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지역별로 조사·공개하고 있다. 2025년에는 동물병원의 진료비 게시 의무 항목을 11종에서 20종으로, 권장 표준 진료절차를 60종에서 100종으로 확대했다. 질병명과 진료행위 코드도 마련했다. 다만 표준 진료절차는 아직 강제규정이 아닌 권장사항이라는 한계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정책 설명

보험연구원은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영수증과 진료 증빙서류의 표준화, 보험금 자동청구, 동물등록 강화, 품종·연령·질환별 의료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일부 제휴 동물병원에서는 보험금을 진료비에서 곧바로 차감하고 보호자가 자기부담금만 결제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이런 방식이 확대되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다시 제출해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


공공보험보다 ‘민간 실손+예방의료 지원’ 현실적

일각에서는 사람의 건강보험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반려동물 건강보험 도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반려동물 의료비를 일반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로 지원하는 문제는 비반려인과의 형평성, 재원 부담, 소유자의 책임 원칙 등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는 민간 실손형 보험을 중심으로 하되 공공부문이 진료정보 표준화와 가격 공개, 동물등록, 취약계층 지원을 담당하는 혼합형 접근이 현실적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이 기르는 반려동물의 예방접종·중성화·기초진료비를 지원하고, 민간보험은 수술과 입원 등 예측하기 어려운 고액 위험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보험료 할인과 예방의료를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정기검진과 예방접종, 적정 체중 관리, 동물등록을 충실히 한 가입자에게 보험료 할인이나 건강관리 포인트를 제공하면 질병의 조기 발견과 장기 치료비 절감을 함께 유도할 수 있다.


기자의 시선, ‘가입했느냐’보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가’

반려동물 실비보험의 목적은 보험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는 데 있지 않다. 갑작스러운 수백만원의 진료비 때문에 가족과 같은 생명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가입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보장 내용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노령·유병 반려동물을 시장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자기부담이 거의 없는 과도한 보장은 과잉진료와 보험료 상승을 불러 결국 전체 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보장 확대가 아니라 투명한 진료비, 표준화된 의료데이터, 이해하기 쉬운 약관, 간편한 보험금 청구와 지속 가능한 위험 분담 구조다. 보험 가입이 어려운 노령·유병동물에는 별도의 의료비 적립상품이나 정액형 수술보험, 지자체 연계 지원제도도 필요하다.

반려견과 반려묘의 수명은 길어지고 의료기술은 고도화되고 있다. 이제 반려동물 의료비는 우연히 생기는 소액 지출이 아니라 생애주기 전체를 두고 준비해야 할 가계 위험이다. ‘아프면 그때 생각한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험과 적립, 예방관리를 함께 설계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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