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챘다 … AI, ‘인공태양’의 불꽃까지 제어

정이든 청년기자 기자 발행일 2026-09-18 07:49:17 댓글 0
- 미 프린스턴 연구진 ‘팩맨’ 공개
- 0.02초마다 핵융합 상태 판단하고 이상 발생 전 대응
[데일리환경=정이든 기자] 인공지능이 글과 그림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태양보다 뜨거운 핵융합 플라스마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사람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위험 징후를 찾아내고, 가열장치의 출력과 방향을 조절해 불안정 현상이 시작되는 것을 막은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프린스턴 플라스마물리연구소(PPPL)와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진은 지난 9월 2일 인공지능 기반 핵융합 제어 체계 ‘팩맨(PACMAN)’을 실제 핵융합 실험장치에서 시험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클리어 퓨전"에 게재됐다. 


▲ 핵융합 시스템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인공지능 체계 ‘팩맨’ 개념도(출처=미국 에너지부 산하 PPPL 공식 발표 자료)


팩맨은 ‘기계학습을 이용한 예측과 제어’를 뜻하는 영문 명칭에서 만든 이름이다. 여러 인공지능 모델이 핵융합 장치의 온도와 밀도, 자기장 신호를 동시에 읽고 플라스마의 상태를 판단한 뒤 필요한 제어 명령을 내린다.


1초에 50번씩 핵융합 상태 점검

핵융합은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을 결합해 에너지를 얻는 기술이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와 같아 흔히 ‘인공태양’으로 불린다.

지구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기체를 태양 중심부보다 높은 온도로 가열해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토카막이라는 도넛 모양의 장치는 강력한 자기장으로 이 초고온 플라스마가 벽에 닿지 않도록 붙잡는다.

문제는 플라스마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작은 흔들림도 수천분의 1초 만에 커져 핵융합 반응을 중단시키거나 장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사람의 반응 속도로는 대응하기 어렵고, 기존의 정밀 시뮬레이션은 계산에 며칠에서 몇 달이 걸려 실시간 제어에 사용할 수 없었다.

팩맨은 전체 판단과 제어 과정을 약 20밀리초, 즉 0.02초마다 반복한다. 1초에 약 50번씩 장치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내리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먼저 각종 센서의 측정값을 수집해 오류를 걸러낸다. 이어 여러 기계학습 모델이 플라스마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예측한다. 마지막으로 제어장치가 가열 빔과 가스 공급장치 등에 명령을 보내 플라스마 상태를 조정한다.


이상 현상 발생 0.2초 전에 예측

연구진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DIII-D 핵융합 실험시설에서 팩맨을 다섯 차례 시험했다.

팩맨은 실험 과정에서 플라스마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에너지 분출을 예측하고, 빠른 입자가 일으키는 파동을 감지·제어했다. 플라스마의 밀도와 회전 속도를 연구진이 설정한 목표에 맞추는 역할도 수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티어링 모드’라고 불리는 불안정 현상을 발생 약 200밀리초 전에 예측한 것이다. 200밀리초는 0.2초에 불과하지만, 20밀리초마다 판단하는 팩맨에는 대응할 시간이 있었다. 인공지능은 플라스마 상태를 미리 바꿔 불안정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았다.

기존 제어장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 다음 이를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핵융합 성능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 반면 팩맨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먼저 알아채고 조건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AI는 플라스마를 가열하는 6개의 ‘자이로트론’도 동시에 조절했다. 자이로트론은 강력한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팩맨은 각 장치의 출력뿐 아니라 마이크로파를 보내는 거울의 방향까지 실시간으로 바꿔 연구진이 미리 정한 목표를 달성했다.


AI가 핵융합로를 마음대로 운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연구가 인공지능에 핵융합 장치의 모든 권한을 넘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진은 사람이 전체 실험 목표와 작동 범위를 설정하고, 별도의 안전장치가 AI의 명령을 다시 확인하도록 설계했다.

서로 다른 AI 모델이 충돌하는 명령을 내리거나 하드웨어의 허용 범위를 벗어날 경우 출력 단계에서 이를 차단한다. 실험이 끝난 뒤에는 물리학자들이 결과를 검토해 다음 실험의 제어 조건을 조정한다.

팩맨의 중요한 특징은 새로운 AI 모델을 부품처럼 추가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모델을 설치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지만 두 번째 모델은 며칠 만에 연결할 수 있었다. 특정 핵융합 장치에만 사용하는 일회성 AI가 아니라 여러 장치와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제어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생성 AI’에서 ‘현실을 움직이는 AI’로

이번 연구는 AI의 역할이 컴퓨터 화면 안에서 문장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센서가 보내는 현실의 정보를 읽고, 위험을 예측하고, 물리적인 장비를 직접 조절하는 ‘행동하는 AI’가 연구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팩맨이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핵융합 반응을 장시간 유지하고 투입한 에너지보다 많은 전력을 경제적으로 생산하려면 재료와 설비, 연료 공급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밀리초 단위의 변화를 AI가 감지하고 제어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 AI는 핵융합뿐 아니라 전력망과 우주선, 반도체 생산시설처럼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복잡한 시스템에서 인간의 ‘초고속 보조 조종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