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노후 전동차 교체 사업이 제작사의 납품 지연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시민 안전과 공공재정 부담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다원시스와 계약했던 5·8호선 신조 전동차 498칸을 한 칸도 정상 납품받지 못한 채 계약을 해제하면서 3천억 원대 보증금 회수에 나선 데 이어, 신규 차량 도입이 2032년까지 밀리면서 기존 노후 전동차를 더 운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종오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는 5·8호선 6차 사업 298칸과 5호선 8차 사업 200칸 등 모두 498칸에 대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보증금 482억 원과 선금보증금 2,580억 원 등 총 3,062억 원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자료에서도 6차 사업은 5호선 208칸과 8호선 90칸 등 298칸 규모로 추진됐으며, 올해 초까지 납품 지연에 대응하기 위해 선금사용 현장점검과 경영진 공정회의 등이 반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4월 조달청은 298칸 사업에 대한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당시까지 해당 사업에서 최종 납품된 전동차는 한 칸도 없었다.
3,062억 회수도 문제지만…더 큰 부담은 ‘노후 전동차 연장 운행’
이번 사태에서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계약 해제 이후다.
서울교통공사는 공급받지 못한 498칸을 다시 발주해 오는 2032년까지 교체할 계획이다. 문제는 새로운 차량이 들어올 때까지 기존 노후 전동차를 계속 운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후 전동차를 계속 운행하려면 법정 기준에 따른 정밀안전진단과 중정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윤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에서는 향후 추가 정밀안전진단에 32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비용은 발생하고 있다. 올해 1월 서울교통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다원시스의 기존 납품 지연으로 노후 전동차 정밀안전진단과 중정비 등에 지난해 말 기준 112억2천만 원이 추가 투입됐다. 5·8호선 298칸 지연과 관련해서만 5호선 77억1,900만 원, 8호선 27억90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제작사의 납품 차질이 계약 당사자 간 손해배상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후차량 유지비와 안전관리비 증가라는 형태로 공공부문에 연쇄적인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예비차량 줄이고 ‘부품 전용’까지…운영 여유도 줄어든다
더 우려되는 것은 차량 운용의 여유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5호선 예비차량 1~2편성을 줄이고 해당 차량의 부품을 다른 운행 차량에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8호선은 다른 신조차량 사업의 물량을 우선 배정해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철도 운영에서 예비차량은 단순히 사용하지 않는 여유 차량이 아니다. 운행 차량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정기검사·중정비에 들어갈 때 정상적인 배차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판이다.
예비율이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차량 한 편성의 장애가 운행계획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부품 전용 역시 긴급한 차량 운용에는 활용할 수 있지만 장기간 지속된다면 부품 공급과 정비체계 전반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업계관계자...“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제때 만들 능력이 있느냐’”
이번 사태는 철도차량 발주제도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한다.
철도차량은 일반적인 물품구매와 성격이 다르다. 차량 설계에서 시제품 제작, 형식승인, 양산, 시운전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한 사업이 지연되면 후속 사업의 생산 일정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는 과거 5·8호선 298칸 사업을 분석하면서 선행 사업 지연에 따라 후속 전동차 제작 일정이 순연되는 문제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교통·철도 전문가 관점에서는 입찰 단계에서 가격뿐 아니라 업체가 보유한 실제 생산시설과 연간 생산능력, 기존 수주잔고, 동시 수행 프로젝트 수, 과거 납품 지연 이력, 재무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수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낸 업체가 실제로 계약기간 안에 차량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지 못한다면 낮은 가격으로 낙찰받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만들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 역시 지난 2월 다원시스의 5호선 200칸 사업과 관련해 계약 후 2년이 넘도록 설계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업체와 대표를 고소했고, 발주 및 평가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99%대 낙찰률까지…경쟁 약화된 철도차량 시장도 들여다봐야
윤 의원이 제기한 또 하나의 문제는 철도차량 제작시장 자체의 경쟁구조다.
제작업체가 제한된 상황에서 최근 일부 서울교통공사 차량 구매사업은 단독입찰로 진행되고 낙찰률도 예정가격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 의원실의 지적이다.
이는 단순히 ‘최저가를 없애면 된다’는 문제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과 생산능력을 엄격하게 평가하더라도 실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가 극소수라면 경쟁을 통한 가격·품질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합심사낙찰제 도입과 함께 국내 철도차량 제작산업의 공급능력, 업체별 적정 수주물량, 발주 시기 분산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싼 가격’보다 ‘제때 들어오는 전동차’가 중요하다
이번 다원시스 사태에서 가장 무겁게 봐야 할 부분은 3,062억 원이라는 보증금 규모만이 아니다.
계약이 해제돼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는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시간은 회수할 수 없다.
신형 전동차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기존 차량을 더 오래 운행해야 하고, 정밀안전진단과 중정비 비용은 늘어난다. 재발주에 다시 수년이 필요하다면 그 부담은 서울교통공사의 재정과 지하철 운영체계로 넘어간다.
더구나 법원은 지난 8월 다원시스가 제기한 계약해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다만 다원시스 측은 납품 지연과 관련해 서울교통공사의 요구사항 변경과 승인 지연 등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도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는 점은 향후 본안 분쟁에서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윤종오 의원이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을 요구한 것도 결국 이 지점과 연결된다. 철도차량 구매에서 중요한 것은 계약 당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약한 차량을 정해진 시기에 안전하게 공급할 능력이 있는 업체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특정 업체의 납품 실패로만 정리해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발주기관 역시 선금 지급 이후 자금 사용과 실제 제작공정을 얼마나 면밀하게 확인했는지, 업체의 동시 수주물량과 생산능력을 사전에 제대로 검증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철도차량 계약 실패의 최종 비용은 장부에 적힌 위약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후 전동차를 더 운행해야 하는 시간과 추가 정비비, 운행 안정성에 대한 부담까지 포함해 계산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와 정부가 이번 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도 명확하다. 철도차량 입찰의 기준을 ‘얼마에 만들겠느냐’에서 ‘누가, 언제까지, 실제로 안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느냐’로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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